문화적 기억에서 문화적 자각으로 가야만 할 전시... 야나기展
2006년 11월부터 2007년 2월25일까지 두 차례나 전시 기간이 연장되고 있는
‘문화적 기억-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발견한 조선 그리고 일본’전은 근래 보기드문 좋은 기획전이다. 이 번 전시를 두고 각 언론사에서 나온 글이나, 주요 잡지에서 다루는 것을 보면 야나기가 남긴 우리나라의 미에 대한 글에 무조건적인 찬사의 글들만 주목받고, 전시내용에 관한 글이 그다지 없음은 아쉬운 일이다. 특히 야나기의 평을 중심으로 가감없이 인식되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 우리문화에 대한 지평이 부족함을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필자는 야나기가 우리나라의 미를 전반기에는 ‘비애의 미’라고 하고, 후반기에는 ‘무작위의 미’라고 ‘한국의 미’를 단편적으로만 평가한 점은 시대적 한계 면에서는 인정하지만 한국이라는 역사를 통틀어 통시적인 美의 맥락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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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와 같은 차를 좋아하고 다도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면 꼭 한 번은 봐야하는 전시라고 본다. 가능한 여건이 되는 분의 관람을 권한다. - 석우.
야나기 무네요시의 생애와 민예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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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3월 21일 아버지 나라요시, 어머니 가쓰오의 3남으로, 도쿄시 아자부구 이치효에정 2초메 13번지에서 출생.
1891년 1월 14일 아버지 나라요시 사망
1901년 9월 12세의 나이로 가쿠슈인 중등학과에 진학, 시가 나오야 등 《시라카바》 도인들과 교유 시작. 하토리 다노스케 선생의 영향으로 기독교에 대한이 싹트다.
1907년 4월 가쿠슈인 고등학교에 진학(18세). 스즈키 다이세쓰, 니시다 기타로, 간다 나이부, 노야나기 시키타 등의 여러 교수에게 지도받았다.
1909년 2월 고오리 도라 히코 등과 회람(回覽), 잡지 《도엔(桃園) 》 발행. 9월 4일 일본에 온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의 집을 무샤노코지 사네야쓰 등과 함께 방문하여 동판화 기법인 에칭의 실연을 보고 이야기를 듣다. 이 무렵 골동품 가게에서 처음으로 조선 항아리 구입.
2007년 2월 21일 수요일
2007년 2월 11일 일요일
품격있는 다기와 값비싼 다기(茶器)
‘품격있는 다기’라고 하는 것은 격(格)을 갖춘 다기라는 말과 상통한다.
만든이의 정성과 기술에 속됨이 없어야 한다. 장인의 작품으로 재료의 선택에서 마무리까지 정성이 묻어나야 한다. 기능적인 면에서는 사용하면 할수록 격조가 있어 보이는 것이다.
이를때 우리는 품격있는 차도구라고 한다. 비싼다기는 무조건 값이 비싼 것을 말한다. 비싼 다기를 수준이 높은 찻그릇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다. 값이 비싸다는 것은 이벤트와 함께 브랜드의 인식을 심어주고, 그후 값을 마구 올려서 아무것도 모르는 소비자들에게 비싼 것이 좋은 것인 줄 알게 하며 판매되는 물건이다.
그래서 ‘품격있는 다기’라는 말과 ‘비싼다기’라는 말은 전혀 다르다.
‘좋은 것을 들여 놓았다’와 제일 비싼 것을 사왔다‘는 말로 구입하는 사람이 다르다는 것과 같다. 모나리자는 배운 사람, 못배운 사람, 남녀노소 불문하고 그 화면 앞에 서면 잘그린 그림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런 그림을 명화(名畵)라 하는데, 그 당시에 가장 비쌌던 그림이라는 설명은 어디에 찾아보아도 없다.
노블(noble)과 익스펜시브(expensive)는 뗄 수는 없지만 구별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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