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30일 수요일

차도구 명칭 연구의 필요성

韓國 茶道具의 名稱

 茶道具 名稱의 必要性

한국 차도구에 대한 명칭이 정립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국제적인 명칭에 대한 정립문제이다. 국제적인 명칭은 이미 문화적으로 많이 알려진 중국과 일본에서 국제적 명칭의 연륜을 쌓아나가고 있다.

이는 곧 세계화의 영향으로서 우리가 앞선 문물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 우리의 문물과 명칭을 알리지 않는다면 곧 국지적인 명칭으로 전락되고 만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때문에 우리는 국제적인 명칭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가장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규범이 될 수 있는 차도구의 명칭을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예는 우리의 “김치”가 일본의 문화적 산물이 될 뻔한 최근의 일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역사적이며 문화의 근원을 잘 판단하여 일본의 문화상품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지만 차도구의 면에서도 이러한 사항은 대표적인 “다완”의 문제가 남아 있다.

때문에 우리의 차문화 속에서도 차도구의 명칭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은 여실히 알 수 있다. 위에 말한 바와 같이 “다완”이라는 명칭도 우리식의 “사발”이라고 하는 명칭에 우선되는 전래명칭이며 우리에게로 건너와 일본에 전래될 당시 한자문화와 한글문화가 뒤섞인 조선 중기에 해당하므로 어느 것이 우리가 내세워야 할 명칭인가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

그 후 학술적으로 공통되게 사용할 수 있는 명칭이 되어야만 외국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표명할 수 있는 국내외 명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앞으로도 수많은 기존 명칭에 대해 사용빈도와 의미의 명확성 등을 고려하여 공식적인 명칭들을 정립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으며,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차도구와 관련된 명칭자료들을 다양하게 수집하여 분석, 정리할 필요가 있다.

- 동양차도구연구소 소장 박홍관 배상 -
원본 / http://teawell.org  2005년

2007년 5월 6일 일요일

자연주의 찻자리 - 4월

장 소  : 대구 수성구 자연주의 찻집
일 시  : 2007년 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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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경원스님의 참석 그 자체였다. 나는 서울에서의 학교 수업이 있어서 2시간 지각을 하였다. 그래서 경원스님과의 차에 대한 담론에 첨여하지는 못했지만, 첫 자리에 앉는 순간 새로운 인물들과의 사이에 전운이 감도는 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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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모임에서도 찻자리에서 가장 연로하신 매다옹 사장님, 새로오신 분들에게 좋은 자리를 내어 놓으시고 구석자리에 앉으셨다. 하지만 노장의 기르침은 자리가 어디에 있던 힘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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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 멤버에 해당되는 한 분 가운데 율리님, 보이차에 익숙한 듯 이젠 주변의 분들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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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님은 와인 전문가이다. 와인을 가까이 두는 시간 그의 밝은 얼굴이 차 마신 만큼 배가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어떤이는 와인 시간을 기다리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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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차하는 시간은 팽주에게 기쁨을 주는 것 같다. 언제나 밝은 미소로 넉넉함이 베어나오는 주인장 박선생님, 다호 가득 담긴 홍인을 꺼집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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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 100g  마신후 자차위해서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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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차를 마시기 위해 우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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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필자의 모습이 주인장의 카메라에 모습이 담겼다. 일주일전 그러니까 4월 초순에 중국 황산을 다녀왔다. 물론 녹차의 제조 방법을 연구하고 차 밭 사진을 담기위해서의 일정이었다. 그 때 3월15일 찻잎을 채취하여 만든 황산모봉을 선물로 가져왔는데 그 차를 필자가 우려내게 되었다. 마침 그 날 강의에 필요한 우리나라 찻잔 종류가 좀 있었는데, 그 찻잔으로 참석자 전원에게 신선한 녹차의 맛을 선사하는 시간이었다.

중국의 차 상세보기
박홍관 지음 | 형설출판사 펴냄
중국 차 입문서. 이 책은 중국에서 차가 생산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12개 성(절강성, 광동성, 운남성, 안휘성, 대만 등)을 각각 수차례 반복하여 조사한 중국차와 그 문화에 대한 실질적인 연구 보고서이다. 차...


이날 새로오신 분의 보이차에 대한 정열적인 모습이 눈에 선하였다. 스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그 분에게 어떻게 비쳐졌는지 모르겠다. 단순히 승려의 모습에서 보았다면 앞을 가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알아보는 눈도 보는 사람의 안복이다.

요즘은 관목이나 교목차에 대한 구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빨간 줄 치면서 공부하는 사람도 많다. 차를 마시는 사람이나, 차를 파는 사람들도 잘 모른다. 그런데 너무 구분을 하고 있다.  좋은 차의 본질을 왜곡하면서 까지... 보이차는 그대로 있는데 사람들이 구분을 하고 있다. 구분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훗날 기록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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