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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2일 금요일

G20 정상회의 TEA-ART 대전과 한국 다도의 날

차(茶, tea)에 관한 행사가 누군가의 좋은 아이디어로 시작되는 것 같다. 과거에는 1년 전에 준비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다. 덕분에 각 단체마다 실익을 따져 구분하는 것을 보면 꼭 정치와 닮아 지난 상대의라 해도 동지로 끌어안기도 하는 형태를 보여왔다.

전통문화를 보존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자기 식구들 까리 찻자리를 펼치는 형태가 기본적이었다면, 요즘은 차의 행사를 거창하게 대한민국 전통문화 계승 운운하여 정부에 손을 벌리는 형태를 벗어나는 것 같다.

시기 적절한 주제로 정부가 좋아할 내용을 담고 서울시와 문화관광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장의 후원을 받아 서울 시청앞 잔디마당에서 자리를 잡는 일들이 예전에 비해 많아 졌다.

이번 서울시청 잔디밭에서 하는 행사의 제목은 "G20 정상회의 TEA-ART 대전"이다. 명분과 실리를 다 잡은 것 같다. 이 행사의 주관은 모두 아시는 바와 같이 용운스님이 운영하는 (사)초의학술문화원이다.

11월 12일 같은 날 "한국 다도의 날"을 선포한다. 이날의 행사가 성공적으로 치루어진다면, 차문화 행사를 경제학적 측면에서 성공한 사례가 될 것으로 본다.

행사 요지는 다음과 같다.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와 지식경제부, 문화관광부, 서울시, 무안군이 후원하고 (사)초의학술문화원이 주관하는 "G20 정상회의 TEA-ART 대전"은 서울광장(시청 앞)에서 11월 12일 "한국 다도의 날"에 개최한다.

한국 다인 300명을 전국에서 선발하여 품위 있고 기품이 넘치는 "한국 다도의 아름다운 TEA-ART대전"을 펼칩니다. 찻자리의 손님을 서울 정상회담에 참가한 외국 수행원과 기자단, 내국인을 청하여 차를 대접하는 멋진 찻자리 한마당이 될 것이다. 본인만의 특징이 있는 찻자리를 연출하며 전통 한복을 차려입는다.

관심있는 분들은 참여해 보시기 바란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반드시 한국차, 한국 다기를 사용해야 한다.


2010년 4월 18일 일요일

오설록 인사동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사진, 인사동에 오픈한 오'설록]

차를 향한 애정과 아름다운 집념이 담겨 있다고 해야 할까요?

차를 향한 아모레퍼시픽의 애정과 아름다운 집념은 한국 차문화를 다시 꽃 피우기 위한 30년간의 노력으로 이어졌다고, 생활차의 대명사로 여기게 되었다는 오설록의 자랑스런 모습일지 모른다.

오설록이 강남 대로변에 오픈 되었을 때만 해도 녹차 전문 숍이 한국 문화의 심장부에서 운영된다는 것이 나름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손님을 만날 때면 그곳을 일부러 찾아가곤 했지만 결국 문을 닫게 되었고 또 다른 변신의 모습을 기대하였다.

차의 계절에 맞추어 문을 열고 녹차 마니아를 기다는 오'설록!

 이번에는 녹차 뿐 아니라 다양한 발효차와 다식을 접할 수 있다. 좀더 자세한 포스팅은 시간이 날 때 자주 하겠지만 오늘 이렇게 반가운 마음에 알린다. 인사동 쌈지길 맞은 편이다. 2층 3층이 고급인테리어로 만들어진 찻집이다. 우리차를 이만큼 자신있게 판매하는 곳이 생겼다는 것은 "아모레퍼시픽"에서 운영하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참고로, 1인당 차 값이 7,000원-8,000원 정도이며 다식은 종류와 기호에 따라 다양하게 접할 수 있지만 다식 값은 별도이다. 매장 입구에 들어서면 덖음차 시연도 해 볼 수 있고, 간단하게 마실 수 있는 작은 포장의 녹차 한 봉지 15,000원 짜리도 있다.

2010년 4월 4일 일요일

봄 소식을 알려주는 보성 녹차의 새 순

 

요즘은 보성 한국 차박물관의 개관을 준비하는 일로 보성에 가는 일이 자주 생겼다. 4월 1일에도 전날 광주에 도착하여 다음날 아침 일찍 버스로 1시간 30분 걸려서 도착했다.

지금은 보성을 방문하는 일이 차박물관에 전시될 유물관의 전시에 관한 일로 가는 일이지만 지난 세월 나의 차생활에 활력을 주었던 보성 차밭을 어떤 계기가 되어 찾으면서 우리나라 차에 대한 연구를 심도있게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날은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일기 예보를 들었지만 사진 장비를 챙겨내려갔다. 차인이라면 모두가 기다리는 햇차를 언제 만날 수 있을까의 기다림이 있지만 대지의 기운을 품고 솟아나오는 새 순을 담아보고 싶었다.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 될지 모르지만 비오는 차 밭의 풍경은 중국의 그 넓은 차밭에서 볼 수 없는 정겨움이 가득했다. 한국인이 가지는 차의 마음이 담긴 곳이라 할 수 있는 보성 대한다엽제1농장과 제2농장의 풍경이다. 제1농자 차밭에서는 새 순을 찾기가 어려웠지만 제2공장의 차밭에서는 조그마한 새순이 올라오고 있었다. 크기로 보아 이제부터 힘차게 하루가 다른 모습으로 보일 것 같은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녹차 향기 가득한 햇차를 기다리면서...

보성 대한다엽 제1차밭

보성 대한다엽 제2차밭

보성 녹차/대한다엽 제2차밭에 보이는 녹차의 새 순

보성 대한다엽 제2차밭 아래쪽

4월1일 녹차의 고향이라고 하는 보성 차밭의 현상은 아주 가까이 다가가야 조그마한 새싹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전국적으로 날씨가 고르지 못한 이유이겠지만 다음 주에 다시 한 번 찾아가 볼 예정이다.

2009년 11월 7일 토요일

차. 공예 박람회에서 본 저자 사인회

부산에서 차관련 행사에 큰 비중을 갖고 있는 부산 국제 차, 공예 박람회가 4회 째를 맞이 하였다. 차인들에게 좋은 정보와 큰 장을 열어서 부산 경남 상인들과 도예가들에게 상품이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여, 차인들은 이 날을 기다리고 찾아가는 즐거움이 많을 것으로 본다. 필자는 행사 이틀째 되는 날인 11월 6일 오후 2시에 방문하게 되었다. 이번 행사에서 저자 사인회가 있다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모두 네사람이 최근 저술한 책을 독자들에게 선보이면서 직접 사인을 받는 행사는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행사장에서 본 저자 사인회는 행사일정에 구색으로 갖추었지 저자의 사인회를 위한 준비가 없어 보였다. 오늘 날자로 사인회를 한다고 공지한 저자는 전체 4명중에서 3명으로 장소도 제각각이고 그 중 한 분은 사인 받을 독자가 없어서 심심해서 그랬는지 무대 행사를 보고 있거나 여기저기 다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런 경우 저자 사인회라고 날짜와 시간을 명시한 주최측의 무성의가 드러나 보였다. 진정 저자를 위하고 차문화 발전을 위해 이런 대규모 행사를 한다고 하면 저자 사인회도 별개의 행사로 여겨야 될 것이다. 행사장의 휴게실 같은 분위기에서 자리만 배정해두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최측은 알고 있어야 한다.

행사 안내문이나 공지로 발표하는 것으로 끝낸다면 지방이나 서울에서 참석한 저자에게 가혹한 일이다.

저자 사인회를 1시부터 5시까지로 늘려 잡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1시간이나 2시간만이라도 시간을 정해서 이 행사에 집중할 수 있게 행사장에서 관심을 끌 수 있도록하고 저자 사인회 시간에는 보조하는 인원이 배치되어야 사인회다운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과 같은 저자 사인회는 진정 저자의 좋은 책을 알리기 위한 것인지 의문이 남는 일이다.

똑 같은 시간에 한 사람은 별도의 부스를 가지고 저자의 회원들이 손님께 차 대접을 하면서 책에 대한 설명과 안내가 뒤따르고 시간 차는 있지만 줄을 서서 기다리며 사인을 받는 모습과 너무 대조되는 일을 보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부산국제차공예박람회의 발전을 기원하는 바램으로 하는 말이다.

차와 공예문화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이번 행사에서 저자 사인회는 5일부터 8일까지 계속된다

⑴[茶經]김진숙(중국절강대학 차학박사) -목,금 1:00~5:00

⑵[사발,자신을 비워 세상을 담는다] [신의 그릇Ⅰ,Ⅱ] 신한균 (도예가)-토,일 1:00~5:00
⑶[보이차다예] 이영자(한중다예연구소 원장) -목,금,토,일 1:00~5:00

⑷[녹동골에 茶가있네] 김기원 (시인) -목,금,토,일 1:00~5:00

2009년 10월 31일 토요일

차문화 답사로 본 허황옥과 김해 장군차

우리나라 차 유래설은 3가지가 전한다 김대렴의 차씨를 가지고 와서 지리산에 심었다는 김대렴 전래설이 있고, 차나무는 원래 우리나라에서도 자생하였다는 자생설, 그리고 삼국유사에 나타나 있는 수로왕비 전래설이다.

그 중에서 수로 왕비 전래설은 상현거사 이능화(1869-1943) 조선불교 통사에 의거, 김해의 백월산에 죽로차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내용은 수로왕비인 허황옥(許黃玉, 33년 ~ 89년 / 수로왕의 부인으로 허황후라고도 한다)은 공주가 서기 48년에 그의 오빠 보옥선사(장유화상)와 함께 차씨를 혼수품으로 가져와 가야에 심었다는 설이다.

[왼쪽 사진]허황옥과 김해 장군차를 연계시켜 김해에서는 장군차라는 상품으로 홍보되는 이 지역의 차는 다음과 같은 사연을 담고 있다. 조선조 인조(仁祖)때 발간한 김해읍지에 보면 황차가 금강곡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고려 충열왕이 왜구정벌에 동원되어 출전하는 군사들을 격려차 김해에 들어 금강사(金鋼寺) 앞에 있는 차나무를 보고 이 차를 마시면 힘이 솟는다는 뜻에서 장군차로 명명했다고 전한다. 이전의 역사에서 허황후를 근거로 삼는다면 장군차라는 명칭의 근원은 가야국의 가야차(伽倻茶)임이 분명하지 않을까 한다.

[200년 수령의 김해 장군차(將軍樹)] - 현지의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차나무의 수령은 200년 정도로 추정되며 가야권인 원예시험장(부산 강동동)에서 우장춘 박사가 관리하였던 나무로서 허황후의 숨결이 살아있는 이 곳 수릉원으로 2008년 3월 16일 이식하였다. 김해 장군차는 서기 48년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이 封茶로 가져왔다는 설이 있고 고려 출렬왕께서 ‘將軍’이라는 칭호를 내렸으며 지금도 차와 관련된 지명, 자생군락지가 여러 곳에 존재하고 있다.

[사진설명, 이번 행사를 주관한 김학용(우리선문화원 부산센타원장)] 부산에서 차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김학용씨는 최근 차문화답사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첫 번째로 김해 장군차의 역사를 찾아다니는 일을 꾸미게 되었다. 나는 부산에서 활동하시는 전정현 선생님께서 초청하여 동행하게 되었다. 마침 현장에 도착하니 차공부하는 사람들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참여가 많은 것도 생소해 보였다.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다식판 , 베겟모 수집으로 알려져 있는 김길성씨, 도예가 김영성씨도 그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모두 8명이 봉고차를 타고 허황후가 가야에 처음 도착한 용원에 있는 망산도앞 유선정에 도착하여 일정을 시작하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는 경상남도 역사 해설가인 A씨의 집으로 가서 본인이 장군차 찻잎으로 떡차를 만들었다고 해서 5개씩 묶은 것은 것을 하나씩 나누어 주고 떡차로 만들 수 있는 작은 틀도 여러 가지 자신이 만들면서 실패하고 한 것도 보여주었다.

허황후묘에 가서 관정다도원 전정현 원장님은 차를 준비해 오셔서 헌다를 하였다. 김길성 선생은 옆에서 보시며 정말 차 하시는 분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신다. “차를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은 이런 곳에 오면 헌다 한 번 하겠다는 마음이 절로 나와야 하는데” 하시며 오늘의 여행이 무언가 의미를 둘 수 있는 듯하여 보기에 좋았다.

이 날 하루를 동행해 보면서 느낀 점은 중국차에 대해서는 온갖 전설까지 공부하는 우리네 현실에서 우리나라의 차의 유래에 대한 접근은 왜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차에 대한 유래도 연구를 한다면 아마도 지역마다 여러 갈래의 유래담이 나올 것 같다.

왜냐하면 차나무 자생지의 입장에서도 지역적 분포가 많은 것이 사실이요, 차나무의 수령으로 따져보아도 그동안의 유래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대규모 차밭이 생긴 것은 조선조 말기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였고, 그 유명한 보성이나 여러 차밭의 조성도 일본에 의한 플렌테이션의 형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 우리 차의 유래를 찾아도 그 뿌리가 초의선사부터가 시작이라고 볼 수 있으니 가야의 역사, 백제의 역사, 그리고 통일 이전의 신라의 역사가 무척 궁금해지는 가야차, 아니 장군차의 답사현장의 느낌이었다.

2009년 9월 30일 수요일

차소비를 위한 Tea day(茶壽 : 차수하세요)

21세기에 들어와서 차산업은 웰빙에 맞물려서 큰 성장을 이루어나가고 있다. 우리나라 녹차 산업은 중국차에 밀려서 힘을 잃어가고 있지만, 그것은 그동안 애국심에만 호소했지 스스로 좋은 차를 생산하여 외국과의 경쟁에서 이겨나갈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중국차 때문에 우리차 산업이 성장하지 못한다는 말은 억지에 불과하다.

중국 발효차의 대명사로 알고 있는 보이차는 차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점과 그렇지 못한 점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대륙의 보이차 투기 붐과 함께 우리나라도 ‘묻지마’ 투자가 이루어지게 되면서 중국의 보이차 시장이 무너지고 한국에 맹목적인 투자 분위기로 몰고 간 상인들과 함께 왜곡된 차시장이 결국은 우리나라 차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4-5년간 우리나라에 거세게 불었던 보이차 붐이 꼭 부정적인 면만 거론할 수는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 녹차 시장은 성장하지 못했지만 보이차 때문에 우리나라의 차 붐이 이만큼 생겼다고 할 수 있다. 3년 전만 해도 보이 생차를 많이 주문하는 상인들이 오래된 숙차는 믿을 수 없으니 우리가 주문해서 안전하게 보관하여 건강한 차를 마시자고 하면서 그런 상인이 건전하고 성실하게 보인 한 시절이 있었다.

보이차는 그대로 있지만 판매하는 사람들이 시시때때로 변명을 해오면서 이젠 오래된 차나무에서 만든 차가 좋다거나, 유기농으로 재배되는 차나 환경이 매우 좋은 곳에서 생산된 차만 마실 수 있다고 하는 차가 생겨나고 있다.

차 소비의 활성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서는 오늘의 이야기가 5년 뒤에는 또 다른 말로 다른 사람의 차는 안 되고 내차만 좋은 것이다라고 하는 방식으로 갈 때 우리나라 차시장의 성장은 요원하다. 차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차를 소비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많은 방법 가운데 지난 5월 21일 “차의 날” 행사가 아닌 또 다른 캐치프레이즈를 걸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차문화 콘텐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산차인연합회 최해룡 사무국장이다. 그가 주장하는 Tea day (茶壽 : 차수하세요)를 보면 다음과 같다. - 다음 - Tea day (茶壽 : 차수하세요)

상인들은 그가 가진 물건을 팔기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 개발한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소비자가 외면을 한다면 그 상품은 현대사회에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거나 혹은 아예 사라져 버린다.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인의 생활 패턴에서 수많은 상품이나 기술들이 끊임없는 생로병사의 원칙에 따라 윤회하거나 소비자의 외면으로 아예 빛을 못 보는 경우도 허다하게 많다.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상품을 알리기 위한 생산자의 노력은 정말 피눈물 날 정도로 치열하다. 젊은이들의 생활문화에 어느듯 자리 잡은 “발렌타인데이”가 한 회사의 상술과 기치에 의해 그 본질이 변화되어 전 세계의 젊은이가 열광하는 날로 바뀌어 버렸다. 쉽게 열광하는 십대들의 특성에 맞게 수많은 상혼들이 “발렌타인데이”를 본보기로 여러 가지 날들을 만들어 그들의 상품을 홍보하기에 바쁘다.

예를 들어보자. 2월14일 “발렌타인데이”때와 반대로 3월14일은 “화이트데이”라 하여 여자가 남자에게 쵸코렛을 선물하며 이도 저도 못한 솔로들은 4월14일 모여 짜장면을 먹는 “짜장면데이”를 만들었으며 5월14일은 로즈데이라 하여 장미꽃을 선물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데이”를 만들어 갔다. 좀 더 현실적으로는 3월3일은 “삼겹살데이”라 하여 삼겹살을 먹는 날이고 11월11일은 “빼빼로데이”라 하여 모회사의 과자를 연상시켜서 그 과자의 매출이 이날만큼은 엄청난 물랑이 팔려 나가기도 한다.

이렇게 소위 “데이마케팅”이 자리 잡으면서 날짜와 관계있는 관련업계에서는 앞 다투어 데이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농수산부에서 2월23일 “인삼데이” 3월3일 “삼겹살데이”, 5월2일은 “오이데이”, 8월18일은 “쌀데이”, 11월11일은 “가래떡데이”로 지정하여 이날 관련된 농산물의 판촉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관뿐 만아니라 일반 민간 기업에서도 자사 상품의 판촉을 위해 데이를 정하였는데 닭 판매업계에서는 9월9일을 “구구데이”라 하여 닭을 할인 판매 하며 12월12일은 “고래밥(과자)데이”라고 하여 과자의 판촉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상혼에 의해 지정된 각종 “데이”들이 50여 날이 된다고 하니 “데이마케팅”의 위력은 실로 놀랄 만 하다고 본다.

이러한 “데이마케팅”은 현대생활에서 매일 매일의 날짜개념을 그들 상품과 연결하여 연상시키므로 인해 그 날짜가 되면 자동적으로 그 상품이 연상되어 물품을 구매하거나 상대방에게 선물을 하는 행동으로 연결시켜 판매 증대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1981년 5월25일 진주 촉석루에서 사단법인 한국차인연합회가 주최하고 진주지부에서 주관하는 제1회 “차의 날”을 선포하였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녹차를 마시는 인구는 극소수에 불과하였으며 아예 우리나라에서는 차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이렇게 차에 관한한 황무지나 다름없는 이 땅에 뜻있는 차인들의 열성으로 “차의 날” 선포이후 오늘날 수많은 차인들을 배출하였고 그로인해 차의 소비도 증가하였다. 그러나 차의 소비율 증가는 주요 차생산국의 소비에 비하여 극소량에 불과하다. 7~80년대의 산업구조는 오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밤낮없이 노동과 근로에 종사하여 잘 살아보자는 일념 하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빨리빨리”의 문화가 이 땅의 산업역군들의 머릿속과 마음속 깊이 배어있는 행동문화가 차를 즐기는 느림의 문화에는 도저히 적응이 어려운 동떨어진 문화였다.

차를 마시기까지의 과정이 복잡하고 맛 또한 단것에 젖어있는 젊은이의 입을 당기기에 부족하였다. 신농씨가 차를 발견한 이래 오랜 세월동안 인류가 차를 마셔왔다. 그것이 약용이나 식용으로 인간은 차를 가까이하였다. 차를 특별한 날을 정해 마신 것도 아니고 또한 강제로 마시게 한 것도 아니며 못 마시게 한 적도 없다. 선조들은 차를 즐기면서 문학을 논했고 시를 읊었으며 절개를 지키고 풍류를 즐겼다.

몸이 상하였을 때도 차를 마셔며 상한 몸을 추스렸으며 쏟아지는 잠을 쫒기 위해 차를 마셨고 옮고 그름을 판단할 때에도 차를 놓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멀리서 벗이 오면 제일 먼저 내어오는 것 또한 차였다. 이렇듯 차는 우리 일상생활에 가장 들어나지 않으면서도 가장 소중한 자리를 말없이 지키고 있었다. 오죽하면 다반사(茶半事)라는 말이 있었겠는가?

그런데 오늘날 차는 여러 환경적인 요인과 사회적인 통념에 의해 그 본질이 변해있다. 갖은 곡물로 우려낸 물을 차라고 표현하며 슝늉도 차라하고 심지에 음료수도 차라고 한다. 물론 커피나 코코아는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차의 본질이 변하면서 현대인들의 차문화가 변화되어 본연의 차가 가진 기능과 역할 등이 축소되거나 상실되는 경우가 나타나며 심지어 차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일도 생겼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여유가 생겨나면서 심적으로 안정되고 풍요로운 삶을 즐기기 시작했다. 더불어 서양에서 불어온 웰빙의 바람까지 몰아치면서 급속도로 그 삶의 질이 향상되어갔다. 물만 위에서 밑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문화도 위에서 밑으로 흐른다. 일부 특수 계층 및 귀족사회에서 즐기던 차문화도 웰빙의 바람을 타고 서서히 대중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때맞추어 여러 단체에서도 차를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으며 교육기관에서도 차와 관련된 학과를 개설하는 등 차문화의 저변확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작은 모임에서 큰 모임까지 많은 이들이 차를 소재로 토론하고 품평하며 차를 즐기는 이들뿐만 아니라 차를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차를 알리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으나 차 소비의 증가는 여전히 미약하다.

더구나 2007년도 가을에 있었던 녹차에서 검출된 농약파동으로 차의 유통 곤두박질 쳤으며 차농들은 그해 생산된 수천통의 녹차들을 폐기처분하는 사태까지 빗어지면서 차의 유통과 소비는 꽁꽁 얼어붙어 해빙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실증이다. 차소비의 확대를 위해 관과 민이 합동으로 차의 안정성을 알리고 소비촉진을 홍보하여도 소비자들의 마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고 있다.

본인의 차문화산업연구소에서는 10월 10일을 Tea Day(티데이)를 정하고 차유통과 소비촉진을 위해 “티 테이마케팅”을 제안합니다. 차(茶)라는 글자에서 艸(20) + 八(8) + 木(八十:80)으로 풀이하여 108이란 숫자가 나오는 것은 차를 즐기는 분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숫자입니다. 그러나 108이란 숫자에는 종교적인 해석의 의미도 있기에 그 누구도 부담 없는 가장 평화적인 날짜로 선정한 것입니다.

티데이를 10월 10일을 정한 이유로는 차(茶)자가 열십(十)이 두개 첫머리에 올라앉아 10월10일을 뜻하며 그 아래 사람(人)이 있어 나무(木)처럼1) 오래 누구나가 다 천수(天壽)를 다 할 때까지 변함없이 살아가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 “10”이란 숫자는 인생이 충만하기를 기원하며 주어진 삶을 다할 수 있는 천수를 뜻하기도 합니다.

“티데이”인 10월10일에 몇 가지 의미를 부여 해 보았습니다. 첫째 10월10일은 가을이 깊어가는 시기입니다. 무더웠던 여름도 가고 가을도 제법 깊어갈 쯤이라 따뜻한 음료가 생각나기 시작할 때입니다. 이때쯤 녹차 한통을 선물 받으면 얼마나 행복 할까요?

둘째 “차수(茶壽 =열이 열이면 백이 됩니다. 100세)하세요”라는 의미입니다. 갑자기 계절의 변화로 인해 건강을 소홀이 하는 경우가 많이 있으므로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라는 의미를 부여 했습니다.

셋째 차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상징하며 맑은 정신과 보은의 의미도 있습니다. 차를 통해 정신을 가다듬고 사리를 분별하며 병을 치료하고 은혜로운 사람에게 보답을 하는 고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10월10일 “티데이”는 윗분들에게 차를 선물하는 날로 하였으면 합니다. 물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을 통해 윗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는 드리지만 이날은 자신 인생에서의 길라잡이가 되어준 존경스러운 분들에게 오래오래 건강하시라는 의미로 “차수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차를 선물하는 Tea Day(티데이)로 정하고자 합니다.

차를 사랑하고 아끼는 많은 차인들과 함께 큰 소리로 “차수하세요”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차수하세요” 2008년 7월21일 차문화산업연구소 최해룡

상기의 일에 관심 있는 분들의 또 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2009년 8월 6일 목요일

조선시대 규범서에 관한 논문 한 편 소개

논문제목 : 조선시대 규범서를 중심으로 한 구용의 몸가짐과 차예절

최근 차관련해서 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논문도 나오지만 급조된 것이 많다 보니까 이제는 책이나 논문이 나와도 관심에서 좀 멀어지는 듯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부분은 번역서로 출간이 되기 때문에 조금 안다고 하는 것은 아는 게 아닌 상식 수준에서 거론되는 것 뿐이다. 오전 외출을 하려는데 우편물이 막 도착한 것이다. 부산에서 이임선(원광대학교 예다학과 석사과정) 학우님이 보낸 것으로 논문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들고 나갔다. 시원한 커피숍에서 한 장 한 장 읽어보면서 최근에 석사논문 가운데 이만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연구자는 그동안 차 예절에 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논문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이만한 자료를 확인하고 정리되었다는 것은 우수한 석사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小學』이 중요시되었던 것은 신유학을 통치이념으로 표방한 조선왕조가 건국 되면서 시작되었다. 유교를 국교로 하였던 조선사회에서 유교이념을 사회질서로 정착시키는데 중요한 수단으로 그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연구자는 문헌연구의 방법을 사용하였으며 조선시대에 주로 많이 인용된 것으로『小學』을 바탕으로 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유아용 윤리교재인 『童蒙先習』, 배우는 이들을 위한 지침서인 『擊蒙要訣』, 조선시대 부녀자들의 가르침이 실려있는『內訓』,『규중요람』,『戒女書』,『土小節』등을 연구하고, 선행 연구를 중심으로 규범서에 나타난 몸가짐을 고찰하여 기거동작의 기본으로 가르쳐온 구용을 바탕을 행다례를 살펴본바 제한점을 갖는다.고 하였다. 선행연구에서는『小學』등 문헌에서 나타나는 몸가짐에 관한 것은 많으나 표와 관련된 것을 찾기 어려운데 이 논문에서는 소학, 격몽요결, 내훈, 규중요람, 사소절 등의 내용을 표로 만들어 이해를 돕고 있다. 그리고 차 생활에서의 몸가짐 편에서는 차생활에서의 구용을  연구자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서 차예절과 연관된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2009년 7월 26일 일요일

[류건집 다부] 한(艹 +寒)과 파(菠)에 관하여

오늘 류건집 교수님을 만나뵈옵고 학위 논문도 전해드리고 그동안 차계의 여러사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최근 출간되는 번역서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는 류교수님은 최근들어 번역서가 많이 나오지만, 차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 아니기에 많은 번역의 오류가 있음에 대하여 아쉬움을 표현하고. 여러가지 사항에 대하여 본의[本意]가 왜곡되어가는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올해 발행된 "다부 주해"의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서 편역자인 류교수님의 뜻을  "석우연담" 블로그를 통해서 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나누게 되면서 그 첫 번째 글을 올리게 되었다.

--茶賦에 나온--  원광디지털대학교 석좌교수 류건집

내가 다부주해(茶賦註解)를 쓰면서 긴 지면을(p80-p100) 할애하여 역점을 둔 것 중의 하나가 한[艹 +寒]과 파[菠]에 관한 것인데, 이에 관해서 아직도 나의 본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서 요약해서 첨부한다.

먼저 결론은 “한[艹 +寒]은 맛이 시고 씁쓸하지만 약효가 많은 고차(苦茶) 계통의 차를 말하고, 菠는 여린 잎을 따서 만든 달고 부드러운 계통의 차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한[艹 +寒]과 菠”는 꽈리나 시금치로 만든 대용차가 아니고, “茗과 荈, 檟, 蔎, 같은 차의 이름이라는 말이다. 곧 앞에 나오는 “茗과 荈”이 차잎의 채취 시기에 의해 분류한 차의 이름이라면, 한[艹 +寒]과 菠”는 色香味에 의해서 분류한 차의 이름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결론이지 무슨 “꽈리차나 시금치차”라는 대용차를 말하기 위해서 그렇게 논리를 편 것은 아니다. 중간에 “꽈리나 시금치”라는 글자 곧 ”한[艹 +寒]과 菠“에 어떤 특징이 있기에 한재가 그렇게 분류해서 사용했을까 라는 것을 究明하기 위해서 차로 만들어 본 것이지 대용차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만들어 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다시 말하면 한재가 중국에서 가서 들었던지, 혹은 어떤 글에서 읽었던지 “한[艹 +寒]과 菠”라는 차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은, 내가 제시한 여러 기록들과 특히 “고대에 쓴맛을 가진 일종의 음료였다(古代一種含有酸味的飮料).” [『제민요술(齊民要術)』, 대소릉인(大小夌) 인(引)『범승지서(氾勝之書)』]는 기록으로 볼 때 확실한 것이다. 즉 한재 생존 당시에 차를 분류하여 부르는 “茗과 荈”처럼 “한[艹 +寒]과 菠”라는 차에 관한 명칭이 있었다는 결론이다. 이는 한재같은 도학자가 근거도 없이 임의로 이름을 만들어서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둘은 어떤 차이로 구분해서 설명했을까 하는 의문을 풀어야 했다. 그래서 한[艹 +寒]과 菠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기록들을 조사해서 제시하고 또 만들어 보기도 한 것이다.

그랬더니 그 둘의 차이가 확연한 것이 들어나서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여기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원래 차를 뜻하는 “荼는 씀바귀에서, 茶는 동백나무에서, 檟는 가래나무에서, 蔎은 풀의 이름에서, 茗은 단술[酩]에서, 荈은 쓴 씀바귀에서 轉義된 글자들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한[艹 +寒]과 菠”도 “꽈리와 시금치”에서 전의된 차의 이름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더욱 자세한 것은 졸저 <다부주해 ; 이른아침> p80-p100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책소개 : 도학의 정종(正宗)을 이어받아 군자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설파하고 있는 명저인 『다부』는 원문 자체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지만 기록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연구, 설명이 부족한 상태였다. 이에 편역자 류건집은 철저한 자료 조사와 고증을 바탕으로 원문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보다 풍성한 의미를 얻어낼 수 있도록 구성하고자 노력하였다.

2009년 7월 4일 토요일

녹차, 구증구포의 실체

한양대 정민 교수님의 한국한문학 홈페이지<다산의 떡차론과 구증구포설>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이 글을 옮겨오게 된 이유는 이 시대의 차 제조법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한데, 현장이나 차관련 학자들은 구증구포에 대한 이해를 잘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 정민 교수의 글에 공감하여 구증구포에 관련된 글의 전문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차 공부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차 만든다고 모두 떡차 만들고 있습니다. 차의글로벌을 이야기하면서 제법은 후퇴하고 있습니다. 지금 마실 수있는 좋은 차가 필요합니다 http://jungmin.hanyang.ac.kr/

 

구증구포(九蒸九曝)의 실체 

다산의 제다법과 관련해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구증구포(九蒸九曝)의 실체는 무엇일까? 구증구포는 오늘날 다산의 권위를 등에 업고 하나의 신화가 된 듯하다. 다산은 앞서 본 이시헌에게 보낸 편지에서 구증구포를 줄여 삼증삼쇄(三蒸三曬)로 말했다. 그렇다면 다산이 만년에 주장을 바꾼 것인가? 이 문제는 좀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구증구포란 말 그대로 아홉 번 쪄서 아홉 번 말린다는 말이다. 구증구포는 인삼이나 숙지황 등 한약재의 강한 성질을 누그러뜨려 약성을 발휘시키기 위해 쓰는 방법이다. 이를 차에다 적용하는 것은 중국에서도 달리 예를 찾기 힘들다. 다산의 구증구포나 삼증삼쇄는 덖음 녹차가 아닌, 곱게 빻아 가루를 내 돌샘물로 반죽해 빚는 떡차에 해당하는 제법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덖음 녹차를 만들면서 다산의 이 구증구포를 적용하고, 이를 마치 절대의 비전(秘傳)인 양 떠받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째서 다산은 그 여린 찻잎을 아홉 번이나 쪄서 말려 차를 법제해야 한다고 했을까? 구증구포에 대한 다산의 최초 언급은 「범석호의 병오서회(丙午書懷) 10수를 차운하여 송옹(淞翁)에게 부치다(次韻范石湖丙午書懷十首簡寄淞翁)」란 시의 둘째 수에 나온다.


小雨庭菭漲綠衣 보슬비가 뜨락 이끼 초록옷에 넘치길래

任敎孱婢日高炊 느지막이 밥 하라고 여종에게 얘기했지.

懶拋書冊呼兒數 게을러져 책을 덮고 자주 아일 부르고

病却巾衫引客遲 병으로 의관 벗어 손님 맞이 더뎌진다.

洩過茶經九蒸曝 지나침을 덜려고 차는 구증구포 거치고

厭煩雞畜一雄雌 번다함을 싫어해 닭은 한 쌍만 기른다네.

田園雜話多卑瑣 시골의 잡담이야 자질구레한 것 많아

漸閣唐詩學宋詩 당시(唐詩) 점차 물려두고 송시를 배우노라.


1구의 ‘녹의(綠衣)’는 마당에 깔린 이끼다. 아침부터 조찰이 내린 비로 뜨락의 이끼 옷이 자박자박 젖었다. 오늘 같은 날은 마냥 게으름을 부리고 싶다. 갑자기 책을 덮으니 무료하다. 공연히 이래라 저래라 아이를 불러 심부름을 시킨다. 의관을 풀어헤친 채 지내다 갑자기 손님이 오면 허둥지둥 의관을 정제하느라 손님맞이가 늦어진다.

5구에 구증구포가 나온다. 직역을 하면 “지나침을 줄이려고 차는 구증구포를 거친다”는 말이다. ‘설과(洩過)’는 『좌전(左傳)』에 “부족함을 건져서 지나침을 줄인다. 濟其不足, 以洩其過”란 표현이 있는데서도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차의 성질이 지나치게 강한 것을 감쇄시키려고 구증구포, 즉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리는 과정을 거친[經]다고 했다. 6구에서는 조촐한 살림이라 닭도 두 마리만 기른다는 이야기를 대구로 얹고, 쓸데없는 잡담에 마음 쓰지 않고, 지금까지 보던 당시를 접어두고 송시를 더 읽겠노라는 다짐을 적었다.

차를 법제할 때 구증구포 하는 이유를 ‘설과(洩過)’에 둔 것이 흥미롭다. 지나치게 강한 차의 성질을 감쇄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한 것이다. 다산의 구증구포설은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 가운데 「호남사종(湖南四種)」이란 항목에 한 번 더 나온다.


강진 보림사의 죽전차(竹田茶)는 열수 정약용이 얻었다. 절의 승려들에게 구증구포의 방법으로 가르쳐 주었다. 그 품질이 보이차에 밑돌지 않는다. 곡우 전에 딴 것을 더욱 귀하게 치니, 이를 일러 우전차(雨前茶)라 해도 괜찮다.

康津寶林寺竹田茶, 丁洌水若鏞得之. 敎寺僧以九蒸九曝之法. 其品不下普洱茶. 而穀雨前所採尤貴. 謂之以雨前茶可也.


중요한 기록이다. 보림사의 죽전차를 처음 개발한 사람이 정약용이라고 밝혔다. 다산이 보림사에 갔다가 절 둘레의 야생차를 보고, 구증구포의 방식으로 차를 법제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는 것이다. 그 품질도 중국의 보이차만 못지않다고 했다. 곡우 전에 딴 것을 더욱 귀하게 쳤다는 것은 앞서 다산이 백운동에 보낸 편지에서 곡우 때가 되었으니 서둘러 따서 떡차를 만들어 보내달라고 한 언급과 일치한다.


구증구포 떡차인 보림사 죽로차

이유원은 「호남사종」외에도 문집인 『가오고략(嘉梧藁略)』에 「죽로차(竹露茶)」란 장시를 지어 보림사 차에 대해 아주 구체적인 기록을 남겼다. 여기서도 다산의 구증구포설은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뿐만 아니라, 차의 법제 과정 및 차 맛까지 자세히 적었다.


普林寺在康津縣 보림사는 강진 고을 자리 잡고 있으니

縣屬湖南貢楛箭 호남 속한 고을이라 싸릿대가 공물일세.

寺傍有田田有竹 절 옆에는 밭이 있고 밭에는 대가 있어

竹間生草露華濺 대숲 사이 차가 자라 이슬에 젖는다오.

世人眼眵尋常視 세상 사람 안목 없어 심드렁이 보는지라

年年春到任蒨蒨 해마다 봄이 오면 제멋대로 우거지네.

何來博物丁洌水 어쩌다 온 해박한 정열수(丁洌水) 선생께서

敎他寺僧芽針選 절 중에게 가르쳐서 바늘 싹을 골랐다네.

千莖種種交織髮 천 가닥 가지마다 머리카락 엇 짜인듯

一掬團團縈細線 한 줌 쥐면 웅큼마다 가는 줄이 엉켰구나.

蒸九曝九按古法 구증구포 옛 법 따라 안배하여 법제하니

銅甑竹篩替相碾 구리 시루 대소쿠리 번갈아서 방아 찧네.

天竺佛尊肉九淨 천축국 부처님은 아홉 번 정히 몸 씻었고

天台仙姑丹九煉 천태산 마고선녀 아홉 번 단약을 단련했지.

筐之筥之籤紙貼 대오리 소쿠리에 종이 표지 붙이니

雨前標題殊品擅 ‘우전(雨前)’이란 표제에다 품질조차 으뜸일세.

將軍戟門王孫家 장군의 창 세운 문, 왕손의 집안에서

異香繽紛凝寢讌 기이한 향 어지러이 잔치 자리 엉긴 듯 해.

誰說丁翁洗其髓 뉘 말했나 정옹(丁翁)이 골수를 씻어냄을

但見竹露山寺薦 산사에서 죽로차를 바치는 것 다만 보네.

湖南希寶稱四種 호남 땅 귀한 보물 네 종류를 일컫나니

阮髥識鑑當世彦 완당 노인 감식안은 당세에 으뜸일세.

海橽耽䔉檳樃葉 해남 생달(栍橽), 제주 수선(水仙), 빈랑(檳榔) 잎 황차(黃茶)러니

與之相埓無貴賤 더불어 서로 겨뤄 귀천을 못 가르리.

草衣上人齎以送 초의 스님 가져와서 선물로 드리니

山房緘字尊養硯 산방에서 봉한 편지 양연(養硯) 댁에 놓였었지.

我曾眇少從老長 내 일찍이 어려서 어른들을 좇을 적에

波分一椀意眷眷 은혜로이 한잔 마셔 마음이 애틋했네.

後遊完山求不得 훗날 전주 놀러가서 구해도 얻지 못해

幾載林下留餘戀 여러 해를 임하(林下)에서 남은 미련 있었다네.

鏡釋忽投一包裹 고경(古鏡) 스님 홀연히 차 한 봉지 던져주니

圓非蔗餹餠非茜 둥글지만 엿 아니요, 떡인데도 붉지 않네.

貫之以索疊而疊 끈에다 이를 꿰어 꾸러미로 포개니

纍纍薄薄百十片 주렁주렁 달린 것이 일백 열 조각일세.

岸幘褰袖快開函 두건 벗고 소매 걷어 서둘러 함을 열자

床前散落曾所眄 상 앞에 흩어진 것 예전 본 그것일세.

石鼎撑煮新汲水 돌솥에 끓이려고 새로 물을 길어오고

立命童竪促火扇 더벅머리 아이 시켜 불 부채를 재촉했지.

百沸千沸蟹眼湧 백 번 천 번 끊고 나자 해안(蟹眼)이 솟구치고

一點二點雀舌揀 한 점 두 점 작설(雀舌)이 풀어져 보이누나.

胸膈淸爽齒根甘 막힌 가슴 뻥 뚫리고 잇뿌리가 달콤하니

知心友人恨不遍 마음 아는 벗님네가 많지 않음 안타깝다.

山谷詩送坡老歸 황산곡(黃山谷)은 차시(茶詩) 지어 동파 노인 전송하니

未聞普茶一盞餞 보림사 한잔 차로 전별했단 말 못 들었네.

鴻漸經爲瓷人沽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은 도공(陶公)이 팔았으나

未聞普茶參入撰 보림사 차를 넣어 시 지었단 말 못 들었네.

瀋肆普茶價最高 심양 시장 보이차(普洱茶)는 그 값이 가장 비싸

一封換取一疋絹 한 봉지에 비단 한 필 맞바꿔야 산다 하지.

薊北酪漿魚汁腴 계주(薊州) 북쪽 낙장(酪漿)과 기름진 어즙(魚汁)은

呼茗爲奴俱供膳 차를 일러 종을 삼고 함께 차려 권한다네.

最是海左普林寺 가장 좋긴 우리나라 전라도의 보림사니

雲脚不憂聚乳面 운각(雲脚)에 유면(乳面)이 모여듦 걱정 없네.

除煩去膩世固不可無 번열(煩熱)과 기름기 없애 세상에 꼭 필요하니

我産自足彼不羨 보림차면 충분하여 보이차가 안 부럽다.


죽로차는 앞서 「호남사종」에서 말한 보림사 죽전차(竹田茶)의 다른 이름이다. 보림사 대밭에 차가 많이 자라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게 차인 줄도 모르고 잡풀 보듯 한다고 했다. 그것을 다산이 와서 보고 절의 승려들에게 차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어 비로소 보림사 죽전차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곡우 이전의 일창일기(一槍一旗)의 여린 잎만 골라 딴 것을 구리 시루로 찌고 대소쿠리로 말려 구증구포를 거쳤다. ‘아침(芽針)’만을 골라 뭉쳐 쥐면 마치 머리카락이 엇짜인듯 하다고 한 것으로 보아, 다산처럼 방아를 찧어 가루로 만든 것은 아니다. 한 점 두 점 작설이 풀어져 보인다고 한 데서, 구증구포한 일창일기 여린 찻잎을 쪄낸 후 그대로 뭉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유원이 마신 보림사의 죽로차는 대나무 발로 짠 작은 그릇에 담아 ‘우전’이란 상표까지 붙인 최고급의 떡차였다.


이유원은 젊은 시절 자하 신위의 집에서 초의가 자하에게 선물로 준 보림사 죽로차를 마신 적이 있었다. 그 후 백방으로 그 차를 구했으나 다시는 마셔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고경 스님이 찾아와 차 한 봉지를 선물하였다. 둥근 떡을 실로 꿰어 꾸러미로 만들었는데, 세어 보니 떡차가 110개였다. 차를 마신 소감은 막힌 가슴이 뻥 뚫리고 잇뿌리에 단맛이 감돌더라고 했다. 효능은 번열과 기름기를 제거해준다고 적었다. 이유원은 『임하필기』에서 중국의 보이차에 대해서도 자세한 언급을 남긴 바 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마셔본 결과 보림사의 죽로차가 결코 중국의 고급 보이차에 못지 않은 품질을 지녔다고 단언하였다. 그래서 그 맛을 기려 후대의 증언을 위해 보림사의 죽로차를 기록으로 남긴다고 했다.


증쇄를 거듭할수록 차의 독성이 눅는다. 냉한 성질이 따습게 변한다. 향과 맛이 부드러워진다. 다산은 이러한 약리를 잘 알았다. 이러한 제다법은 확실히 약용으로 차를 음용하던 습관에서 나온 것이다. 위 시를 통해 이유원이 「호남사종」에서 말한 구증구포로 법제한 보림사의 죽전차, 또는 죽로차는 잎차 아닌 떡차임이 더 확실해졌다. 또 다산이 처음 제다법을 알려주었다는 보림사 죽로차를 초의가 그 방식대로 만들었다는 것으로 보아, 초의차 또한 다산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일제시대로 이어진 떡차 제법

보림사의 구증구포 죽로차가 떡차였다는 사실은 조선의 차에 관심이 많았던 모로오까 다모쓰(諸岡 存, 1879-1946)와 이에이리 가즈오(家入一雄 1900-1982)가 1938년 전남 나주군 다도면 불회사와 장흥 보림사 등을 직접 답사하여 조사한 결과와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답사기에 수록된 불회사의 전차[磚茶] 제다방법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차를 만드는 기본은 순을 딴 뒤의 남은 잎을 채취해서 이것을 하루 안에 3,4회 찐(찐 것을 방안에 얇게 펴서 식히는 정도로 하여 찌며, 찌는 횟수가 많을수록 향기와 맛이 좋다) 것을 절구에 넣고 끈적끈적하게 충분히 찧은 뒤, 지름 아홉 푼(약 2.3cm), 두께 두 푼(약 0.5cm)이 되게 손으로 눌러 덩어리 모양으로 굳히고, 이 복판의 작은 구멍에 새끼를 꿰어서 그늘에 말리며 될 수 있는 대로 짧은 기간에 만들어 사용한다.


몇 번을 찌든 차 잎을 딴 그날 낮과 밤 안에 여러 번을 찌는데, 찌는 횟수가 많을수록 향기와 맛이 좋아진다고 언급한 사실이 흥미롭다. 또한 완전히 건조시키지 않고, 찐 것을 방안에 얇게 펴서 뜨거운 기운을 식히는 정도로만 말린다. 이렇게 여러 번 찌고 말리는 일을 반복하는 이유는 향과 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해서다. 여러 차례 찌고 말리기를 되풀이한 뒤에 비로소 절구에 넣고 끈적끈적해질 때까지 찧는다. 찌는 회수를 3,4회 정도라고 했는데, 앞서 본 이시헌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한 다산의 떡차 제조법과 한 치의 차이가 없다. 또 당시 보고서에는 보림사의 청태전(靑苔錢) 제조 방법도 보인다.


이(보림사) 부근에서는 청태전을 보통 차라고 하여, 1919년경까지 부락 사람들이 만들었으나, 그 뒤 작설차(雀舌茶)를 마시게 되면서 만들지 않는다. (중략) 가져온 날잎차는 곧장 가마에 넣고 쪄서 잎이 연하게 되면 잎을 꺼내(찻잎이 누런 빛깔을 띨 무렵) 절구에 넣고 손공이로 찧는다. 찧을 때는 떡을 만드는 것처럼 잘 찧는다. 이때 물기가 많으면 펴서 조금 말리고, 굳히기에 알맞게 되었을 무렵, 두꺼운 널빤지 위에서 내경 두 치(6cm), 두께 5리(0.15cm), 높이 1푼 6리(0.48cm) 가량의 대나무 테에 될 수 있는 대로 짜임새가 촘촘한 얇은 천(무명)을 물에 적셔서 손으로 잘 짜서 펴고, 그 안에 찧은 차를 넣고, 가볍고 평평하게 엄지 손가락으로 눌러 붙인다. 그것이 조금 굳어갈 때에 꺼내서 자리 위 또는 평평한 대바구니 위에 얹고 햇볕에 쬐어 절반쯤 말랐을 무렵에 대곶이로 복판에 구멍을 뚫는다. 잘 마른 다음 곶이를 꿰면 차가 부서지므로, 연할 때에 하나씩 꿴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그 날 안에 말리도록 한다.


찐 차 잎을 절구에 찧고 말리는 과정 또한 다산의 방법과 같다. 대나무 통을 얇게 잘라 차 잎을 담을 틀을 만들고, 거기에 찧은 차를 눌러 담아 말렸다. 당시 보고서에는 50년도 더 된 청태전이 이 마을의 집에서 발견되었다는 언급도 있다. 다산 이래로 초의가 만들고 이유원이 마셨던 죽로차를 거쳐, 보림사 인근에서 생산된 청태전, 즉 떡차는 지속적으로 생산되었던 셈이다.


다산은 구증구포가 차의 강한 성질을 감쇄시키기 위함이라고 했고, 위 글에서는 차의 향과 맛을 더 좋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증포를 거듭하면 강한 성질이 감쇄되면서 향과 맛이 순하고 부드러워진다. 이유원은 위 시에서 차를 마시자 막힌 가슴이 뻥 뚫리고 잇뿌리에 단맛이 감돌더라고 해서 이를 뒷받침했다.

구증구포는 여러 차례 되풀이한다는 의미이지, 꼭 숫자를 세어 아홉 번 하란 말이 아니다. 9는 만수(滿數)이므로, 여러 번의 뜻으로 흔히 쓴다. 이렇게 본다면 다산이 이시헌에게 보낸 편지에서 ‘삼증삼쇄(三蒸三曬)’로 횟수를 줄여 말한 것도 이해가 된다. 다산이 말한 구증구포는 꼭 숫자를 헤아려 아홉 번을 말한 것은 아니었고, 3회 이상 여러 차례 찌고 말리는 과정을 되풀이 한다는 의미로 보아 무리가 없겠다. 즉 다산이 만년에 횟수를 줄이는 쪽으로 견해를 수정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를 오늘날의 구증구포설처럼 교조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다산이 직접 말한 증거가 나왔으니 구증구포는 마땅히 삼증삼쇄로 바뀌어야 옳다. 하지만 찌는 횟수가 몇 번이냐는 큰 의미가 없다. 더군다나 이때 구증구포는 녹차 아닌 떡차를 전제로 한 언급이 아닌가?

이제껏 다산의 떡차론과 구증구포설을 살폈다. 다산이 통상 마신 차는 잎차 아닌 떡차였고, 구증구포로 법제한 차 또한 덖음 잎차가 아닌 떡차였다. 다산이 중국에서도 쓰지 않는 구증구포의 방법을 도입한 것은 당시 조선에서 차가 약용으로 사용된 것과 관련이 깊다. 또한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하는 당시 조선의 식습관에 비추어 녹차는 성질이 너무 강해 위장에 강한 자극을 주고, 정기를 손상시킨다. 차의 냉한 성질을 감쇄시키고 떫은 맛을 부드럽게 하며 단맛을 강화시키는데 구증구포의 제다법은 상당한 효과가 있었으리라고 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 연구자들의 과학적인 검토가 더 필요하겠다.


필자는 이글에서 다산 선생께서 마신 차가 떡차였으니,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차도 떡차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떡차는 진공 포장이나 냉장 보관을 생각조차 할 수 없던 당시에, 잎차를 덖을 경우 장마철을 넘기기도 전에 차가 발효되어 맛이 변해 버리는 상황에서 나온 제다 방법이었다. 떡차가 잎차보다 맛이 더 좋아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시대가 다르고 기술이 발전하면 제다법도 바뀌는 것이 마땅하다.


연암 박지원은 법고이지변(法古而知變)과 창신이능전(創新而能典)을 말했다. 옛 것을 본받되 변화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더라도 능히 법도에 맞아야 한다는 말이다. 과거의 자취를 함부로 왜곡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전통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위험하다.


2009년 6월 28일 일요일

석우연담(石愚硯談) 소개

‘석우연담’은 오랜 동안 경험한 정적인 취미 생활의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진 차와 기물(器物) 사랑, 그리고 졸저,〈찻잔이야기〉와 <사기장이야기>, 한국에서 최초로 수준높은 차도구 전문지 <아름다운차도구>를 준비하고 발행하는 과정, 중국대륙의 차 생산지 12개 성을 조사, 기록한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의 저자로서 수 많은 경험담들을 진솔한 시각으로 담아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자 함입니다.

여기에는 여러분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모자란 부분은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도움과 격려로 채워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석우(石愚)’는 2000년 제가 인터넷비즈니스를 할 때, 가장 힘든 시기에 정신적 물질적으로 아낌없이 후원해 주신 동봉 스님으로부터 받은 호이기에, 그 뜻을 더욱 깊이 새기고자 제가 연담(硯談)을 붙혀 ‘석우연담’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상에서 새로운 걸음에 함께 합니다.

주요 논문,

「한국차도구 명칭 통일 모형에 관한 연구」원광대학교 한국문화학과(예다학전공) 문학박사

2005년「한국차도구명칭 시고 Ⅰ」국제차문화학회, 2009「한국차도구명칭 시고 Ⅱ」국제차문화학회

이메일 주소는 wkey@hanmail.net 입니다. 제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의 논문이나 저의 저술 관련 분야에서 문의 하실 일이 있으시면 연락주십시오. 이메일 또는 방명록(비밀뎃글)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석우연담 블로그의 간단한 약력입니다.

2007년 1월 17일 - 티스토리에서 블로그 시작

2009년 5월 20일 - 블로거 네트워크, 태터앤미디어 멤버로 참여

2009년 6월 18일 - 텍스트큐브닷컴(구글) 블로그로 이전

2009년 6월 25일 - 방문객 9만명  웨젯랭킹 1130/10100

2009년 7월 25일 - 방문객 10만명 돌파(?) 위젯랭킹  885/11985

2010년 2월 04일 - 방문객 15만명 돌파(?) 위젯랭킹 1409/22382

2010년 8월 08일 - 방문객 21만명 돌파(?) 위젯랭킹 2028/32199

 

주로 다루는 내용

세계의 차(茶, tea), 차도구, 차도구 명칭연구, 한국의 찻자리, 향 등입니다.

2009년 6월 26일 금요일

제3회 청소년 차예절 겨루기 대회

우리나라 차예절 관련 단체에서는 전국 지회를 통해서 각 단체 고유의 행다법을 교육시키고 있다. 어린 아이들이지만, 차를 바르게 마시고 차로서 대접할 줄 아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 과정에서 차이는 있지만 차를 내는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와 도구를 사용함에 있어서의 유연성,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는 방법 등을 배우게 된다. 최근 전국의 유치원에서는 다도예절반으로과목이 만들어진 곳이 많이 있으며 이곳으로 차마시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또 한 부모님의 참여프로그램도 많이 활성화되어 있어서 지역민의 교양 프르그램 형식을 갖추고 있다.

대구세계차문화축제(2009년6월18일-21일) 기간 마지막 날에 열린 청소년 차예절겨루기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엄수민(유치부), 유혜진(초등부), 김혜진(청소년부)은 축제위원회대회장상(대회장 이진수)을 받았다. 심사위원은 위원장 김태곤, 심사위원 박선우, 배계순, 김정규, 하태선으로 모두 대구에서 오랜기간 차회 활동을 하며 후진을 양성하고 있는 다례원 원장으로 구성되었다.

[차예절겨루기 대회에 참가한 원생, 왼쪽부터 명지유치원생과 금강유치원생] 이번 차예절 겨루기대회에서 금강유치원 원생 3명이 대상과 최우수상, 장려상을 모두 수상하였다(5번, 6번, 7번).
[사진 위, 대구 시내 유치원생으로 청소년 티를 내는 유아생]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청소년부 등으로 나누어 시행되는 차겨루기 대회는 어떤 행다법을 하드라도 교육받은 대로 하기 때문에 실제 행다법의 순서나 다구배치에는 교육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순서가 다르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유치원생부터 차예절을 익힌 아이는 가정에서도 쉽게 차생활에 적응하며 차를 마시면서 사회성도 넓혀나가게 되는 좋은 이점을 가지고 있다. 차 예절 겨루기 대회는 전국에서 각 단체마다 시행되고 있다.

[부모마음은 누구나 같습니다]

[심사위원 좌, 하태선, 배계순, 김태곤(심사위원장), 박선우, 김정규]

차예절겨루기 대회는 매회 참가유치원이 늘어가고 있으며, 부모님의 관심이 많은 분야가 되었다.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녹차수도 보성에서 녹차만들기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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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잎이 펼치는 세상]

인터넷상에서 동호회를 만들어가는 유행이 최근들어서는 조금 가라 앉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다음의 카페를 통해서 소극적인 운영을 탈피하고 온라인의 영향을 피부로 실감하며 카페의 활성화를 위한 오프라인 매장의 대표들은 온라인의 순기능 측면을 좋게보고 카페를 개설하고 있다. 이가운데는 온라인 상의 모임에서 순기능적 측면만을 생각하고 운영하고 있다.

중국차 전문점인 인사동 명가원에서 카페 회원들을 중심으로 한 첫 번째 제다 체험이 5월17일 녹차수도 보성, 초록잎이펼쳐지는 세상(대표 서찬식)에서 있었다. 전체 참여 인원은 45명이지만 가족과 함께하거나 학생들의 참여로 회원 구성원은 30명 정도 참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회원이 오늘 현재 355명으로 볼 때 30명 정도의 정식 회원이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하였다면 충성도가 높은 회원이 상당히 많은 편에 속한다. 충성도가 높다는 것을 상대적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현재까지는 순수하게 즐기는 충성도이나 명가원 카페의 기여도 점수와는 다른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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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이 시골 차밭 구경 하면서 차잎 따기에 열중하는 모습]

11시경 보성제다에 도착한 현장 분위기는 그 전날까지 내린 비 덕분에 찻잎이 아주 청결하고 싱싱해 보였다. 녹차 찻잎이 싱그러움을 보일 때 우리의 마음으로 더욱 건강한 눈길을 주고받는다. 찻잎을 따고 만지면서 이랑을 걸으며, 짧은 시간 속에서의 교감은 오랜 기간 우리에게 차에 대한 신선함을 전하고 일상에서 녹차를 대하는 마음이 더 따뜻하게 다가서게 된다. 이럴 때 우리는 거부감이 생기지 않게 된다. 그래서 좋은 소식을 전하면 “보성지역에서 생산되는 차”는 절대로 농약을 살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년에 두 번 토양 검사와 수시로 행하는 찻잎 검사에서 농약이 검출되면 그 차밭에서 나온 찻잎을 농협에서 수매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그 날 찻잎을 손수 따와서 제다를 체험하는 시간을 가진 것은 앞으로 차생활을 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볼 수 있다. 모두 열정적으로 행하는 제다 실습을 볼 때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기에 아름다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체험장의 보조 도우미의 역할도 좋았으며 준비도 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옛날에 비해서 체험학습장의 시설은 매우 만족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볼 때, 다양한 프로그램이 만들어 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적용가능한 일은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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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일 아침에 비가와서 주변의 차밭 풍경이 청명하고 아름다웠다]

녹차 만드는 방법
처음덖기 - 처음 비비기 - 두 번째 덖기 - 두 번째 비비기 - 마무리덖기 - 차 윤기내기
(차 윤기 내기에서는 80℃ 정도로 낮춘 가마에 차잎을 넣고 휘저으며 건조시킨다.)

이번 행사에 조금 보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말한다면, 첫 번째, 제다 체험을 하고 난 뒤에 체험장 주인으로 하여금 가장 잘 만든 조를 선별하여 왜 잘 만들어졌는지를 설명 듣게 되었다면 학습이 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과 두 번째, 체험 시간 전에 참여한 분들의 소개가 있었다면 회원간의 소통에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자리에서 가족을 소개하고 함께한 친구를, 여자 고등학생이 누구에 의해서 참석하게 되었는지,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과의 조우와 대화, 전문성을 가진 회원들의 조언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을 때, 온라인에서 만난 회원이 더욱 두터운 결속력을 가지는 것이다. 오프라인 모임을 가지는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런 다음 제다 체험은 한결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어울리고 섞이면서 언니가 되고 누나가 되며 선생이 되고 아저씨와 이웃 아주머니가 될 수 있다.

하루 여행이지만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고 아침식사 대용과 점심 준비는 참가자 모두가 만족해하는 것 같다. 아무튼 명가원에서는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 헛되지 않았고, 돌아오는 길에 추첨을 통해서 푸짐한 상품이 주어졌으니 이번 여행에 동참한 분은 일거양득인 것 같다. 행사 진행을 적극적으로 맡아주시고 결산보고서까지 작성한 세명님과 카페 운영자인 김경우 대표에게 감사한 마음을 회원들을 대신해서 전하는 바이다.

전남 보성 체험장 현황 - 청우녹차, 골망태다원, 보향다원, 샘골녹차, 선다원, 백록다원, 다도락, 보성녹차사랑, 승설녹차, 초록잎이펼치는세상, 붓재다원, 보성녹차식품개발원

문의전화 보성군청녹차사업단(850-5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