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31일 월요일

맛있고 건강한 차(茶, tea) 봉황단총

필자는 차(茶, tea) 사진 기록을 하면서 중국 대륙의 12개 성(운남성, 광동성, 복건성, 절강성, 호남성 등)을 4년간 다녔다. 사진 작업을 하는 가운데 광동성 조주시에 있는 봉황단총 산지는 나에게 신천지와도 같은 인상을 주었다. 특히 가장 오래된 송종나무가 있는 오동촌의 고차수는 차나무의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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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006년 발행의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의 많은 부분이 수정 보완하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봉황단총 부분을 먼저 블로그를 통해서 밝히면 아래와 같습니다. 2008년 1월 발행할 예정인 개정판에서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변경됨을 알립니다. 수정된 것은 초판에서의 내용이 틀린 것이 아니라 차를 연구하는 학생들에게 체계적인 학습을 위한 단계에서 봉황단총이 가진 중요한 내용을 요약 정리하였다고 보면 됩니다.

본문: 완성된 차의 외형은 가늘고 길며 검은빛을 띈 진녹색이다. 상큼한 꽃향기와 과일향이 어우러져 향긋하면서 뒷맛은 깔끔하다. 탕색은 오렌지색을 띈 황색이며,
[사진 : 봉황단총 오동지역 차의 엽저] 봉황산의 수선품종으로 만들어 진다.봉황단총의 의미는 봉황산의 지명과 단총(單欉)의 재배와 제다의 특징 때문에 비롯되었다.

재배와 제다에서 향기가 서로 섞이지 않도록 많은 주의를 기울이며 변종된 찻잎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향기는 따로 재배되어 하나의 신품종이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개발된 차는 지금 현재 무려 80여 가지의 종류가 넘어서고 있다. 봉환단총의 고급차 이름에는 송종(宋種)이란 표현이 반드시 따른다. 이는 송나라 때 발견된 차나무인 송차(宋茶)에서 번식된 품종으로 만들어진 차라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청차 / 봉황단총 p152>

이 부분에서 다른 의견이나 보완적인 내용이 있는 분의 고견(댓글에서)을 환영합니다.

중국의 차 상세보기
박홍관 지음 | 형설출판사 펴냄
중국 차 입문서. 이 책은 중국에서 차가 생산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12개 성(절강성, 광동성, 운남성, 안휘성, 대만 등)을 각각 수차례 반복하여 조사한 중국차와 그 문화에 대한 실질적인 연구 보고서이다. 차...

천량차(千兩茶)의 신비와 오해

천량차는 흑차의 한 종류로 차의 무게가 100량인 백량차(百兩茶)로 만들었다가 청나라 동치(同治 : 목종, 1862~1875) 황제 재위 때 진(산서성과 하북성의 남부지역)의 삼화공(三和公)이라는 차(茶, tea)가게에서 차의 운송을 더 쉽게 하기 위해서 큰 댓살 바구니를 이용하여 박량차의 10배인 천량차를 만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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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천량차의 절편과 탕색, 호남성 백사 차창에서 촬영]

이 천량차의 역사에 있어서 필자는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 천량차 편에 (1950년대에 차창에서 작업을 한 기술자들을 불러 모아 천량차를 제작하였다. 그 기술자들은 이미 70년대가 되어서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천량차의 역사적인 계승을 위해 조직을 안배하고 초여름에 시작하여 가을 중엽까지 약 4개월 정도만 생산하는 일이 혼신의 힘을 기울이면서 공식적으로는 1983년에 재현이 되어 1차 생산 후 중단되었다. - 이 부분에서 호남성을 여러차례 방문하고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는 분의 자료에 근거한 반박을 향후 추정한다면 그 자료를 준 사람과 내게 이런 내용을 전한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고 하는 것을 밝힌다. 그래서 두 가지 설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자료에 의하면 1958년 ~ 1988년까지는 화권(千兩茶. 花卷)의 생산은 없다고 되어 있다. 기록을 남기는 부분에서는 1983년 재현을 시도하면서 1차 생산하고 중단한 내용을 기록에 남기지 않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1957년부터 1988년까지는 필자로서 현지 확인과 자료에 의한 보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내용에 대한 다른 견해를 가진 분의 고견을 기다립니다.(책 200p~201p)

중국의 차 상세보기
박홍관 지음 | 형설출판사 펴냄
중국 차 입문서. 이 책은 중국에서 차가 생산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12개 성(절강성, 광동성, 운남성, 안휘성, 대만 등)을 각각 수차례 반복하여 조사한 중국차와 그 문화에 대한 실질적인 연구 보고서이다. 차...

2007년 12월 23일 일요일

[아름다운찻자리] 명가원 - 쌍화보이차 동영상


명가원 김경우 사장의 카페 회원에 대한 보답으로 오픈 찻자리가 있었습니다.

처음 이 자리를 만들고자 할 때는 어떤 형식이었는지 잘 모르지만 약간은 성격이 모호 했든 것 같습니다. 진중한 찻자리의 격을 갖춘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것이라 봅니다. 이제 이러한 자리를 시작으로 서울에서도 주제가 있고 사람이 있고 그 가운데 茶가 있는 자리를 만들어 보고자하는 많은 차인들의 마음을 잡을 찻자리가 계속 만들어 지길 기대합니다. 첨부하는 동영상은 편집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건의 동영상 가운데 간단 명료한 쌍화보이차를 우려낼 때의모습을 담은 것으로 올렸습니다. 초상권 문제로 주변의 인물은 촬영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다면 두 번째 동영상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이날 오명진 선생님이 동경철병을 후원해 주었습니다. 진중하고 좋은 차를 사람이 많은 관계로
차의 순수한 맛을 즐기기엔 여건이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이제 서울에서도
주제를 가진 찻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자리였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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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가원 대표 김경우 사장, 유건집 교수, 유동훈님, 태권37님 ...

<한국의 찻자리(2002-2007)>에서 상세한 내용이 나오겠습니다.

석우.

2007년 12월 14일 금요일

일본 동대사(東大寺 도다이지)의 남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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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대사 입구 南大門(남대문, 남다이몽) 국보

東大寺(도다이지)는 聖武天皇(쇼무텐노)의 황태자 基親王(모토이신오)를 추도하기 위하여 神龜5년(728)에 세워진 金種山寺(긴쇼산지)에 그 시원을 두고 있다. 즉, 이 긴쇼산지는 天平(텐표)13년(741)에 두 곳의 國分寺(고쿠분지 : 金光明寺 · 法華寺)를 건립한다는 천왕의 조서가 발표된 뒤 大和國(야마토국) 金光明寺(긴코묘지)로 승격되었고 이 후 東大寺로 이름이 바뀌었던 것이다. 743년에 노사나대불을 조성 한다는 조서가 발표되고 수도가 시가라키에서 平成15년(749)에 완성되었다. 동시에 大佛殿(다이부쯔덴)의 건립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勝寶4년(752)에 성대한 開眼 供養會(개안 공양회 : 완성 법회)가 열렸다. 그 후 서탑과 동탑, 강당과 三面의 승방 등이 造東大寺司(조동대사사)라는 기구의 주도 아래 건립되어 소위 東大寺의 七堂伽藍(칠당가람)이 순차적으로 갖추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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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사(東大寺) 大佛殿(다이부쯔덴) 

東大寺는 國分寺로 건립되었기 때문에 천하태평 · 만민풍락을 기원하는 사찰인 동시에 불교의 교리를 연구하고 학승을 양성하고자 하는 목적도 지니고 있어서, 화엄을 비롯하여 나라시대의 육종 그리고 헤이안시대의 천태와 진언을 포함한 각 종파의 연구소가 설치되어 팔종겸학의 학문 사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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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大門(난다이몽) 국보 가마꾸라시대 / 남대문 앞에는 늘 사슴과 관광객이 함께 한다.


東大寺(도다이지)의 정문으로 8세기 창건시의 문은 平安時代(헤이안시대)에 큰 바람으로 쓰러졌다. 현재의 문은 가마쿠라시대에 東大寺 부흥에 진력한 죠겐쇼닌이 당시 새로운 건축양식인 송양식을 바탕으로 하여 성립시킨 대불전양식(大佛樣)으로 재건한 것이다.


大佛殿(다이부쯔덴)

東大寺(도다이지)의 金堂으로 나라시대 8세기에 창건된 이후 1180년과 1567년 두 번의 兵火로 소실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에도시대에 公慶上人(고케이쇼닌)에 의해 재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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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大佛殿(다이부쯔덴)앞의 향로


2007년 11월 27일 화요일

조선남다로 다큐제작

조선남다로 다큐멘터리

11월24일 광주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 가진 국제차문화학회 학술대회에서 논문 발표를 하기전, 조선남다로 다큐멘터리 제작안내를 강동오 매암차박물관장의 설명이 있었다.

기획 의도를 보면
1. ‘조선남다로’를 통하여 지난 시절 단절되고 왜곡되었던 우리 차와 차문화를 새롭게 복원하고자 한다. 2. 다큐멘터리를 보는 모든이가 다양하고 우수했던 우리 차와 차문화의 역사와 전통성에 대해 사회,문화적으로 인식하고 자긍심을 갖을 수 있게 한다. 3. 차문화에는 자국의 다양한 문화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차문화를 ‘ 화의 모체’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중국과 일본 등 차선진국은 문화적 상품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이에 대응하는 문화상품의 일환으로 조선 남다로를 기획하고자 한다. 4. FTA 등으로 존폐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 차 산업의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고 하였다.

학회에서 의미있는 내용을 볼 수 있어서 즐겁고 기대도 가지게 되는 일이었다. 이제 잊혀지고 또 왜곡되어왔던 우리 차의 세계를 조선 남다로를 따라 새롭게 조명하고 그 전통의 제다법을 재현하여 문화적 재미와 깊은 감동을 주는 영상으로 연출되는 다큐멘터리는 한국 차문화의 확산과 발전에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일들이 개인의 홍보 차원에서 다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차문화라는 큰 틀에서 만들어 질 때 사료적 가치와 더불어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영상물이 더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2007년 11월 23일 금요일

찻잔이야기 개정 증보판 출간

 

찻잔이야기 - 책소개


이 책은 차(茶, tea)를 마시는데 꼭 필요한 찻잔을 만드는 작가 85명을 선정하여 그의 대표작과 작풍에 대한 자료로서 1969년부터 2007년까지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저자의 비평을 담은 것으로 이처럼 명쾌하게 총정리한 책은 이전에 없었다. 찻잔이야기는 단순히 찻잔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찻잔에 대한 에세이와 한국 현대 도자사에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전통도예가의 찻그릇에 대한 실상을 그대로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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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 이야기》개정 증보판은 2003년《찻잔 이야기》출간 이후 4년 만에 간행되었다. 첫 출간에서 57명의 작가를 선정한 내용에 현대 도예 작가의 약진과 대학가의 예술 작품의 급속한 발전에 대한 한국 현대 차도구의 역사적 기록으로 28명의 작가군을 새로이 발굴하여 현재 한국 차도구의 흐름과 작품의 유형을 재조명하였다.


저자 소개
저자 박홍관은1987년 부산 묘각다회에 입회하면서 차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지금까지 20년 동안 오로지 찻그릇 연구에 열정을 쏟아왔다. 저서로 <찻잔이야기>(2003), <사기장이야기>(2004),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2006)가 있으며, 현재 <아름다운차도구>발행인이며 국제차문화학회 부회장이다. 저서인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는 2007년 문화관광부 교양도서로 선정된 책이기도 하다.

                                                      - 목차 -
. 석우연담
이름값 / 품격있는 다기와 값비싼 다기 / 명품이란 과연 무엇인가 / 과도기와 소비자의 선택
사기장은 덕을 쌓아야 한다 / 안복 / 공개하기와 평가받기 / 모방, 예술이냐 베끼기냐 / 찻잔과 잔받침의 화음 / 여유로운 차 생활을 하여면... / 호중거하니 무릉도원이라 / 차실풍경 / 수여좌 / 찻자리와 밥상 / 차인이라면 / 다기값, 다구값 / 동도서기 / 당시의 명품이라면 지금도 명품이다 1 / 당시의 명품이라면 지금도 명품이다2 / 야나기는 죽었다.
 

. 찻잔을 통해 본 세상 풍경
경의찻잔 / 초심 / 음미용찻잔 . 생활찻잔 / 대사호 / 옥잔 / 운학다관 / 달다관 / 연잎다관 / 효자독 / 도태칠기 찻잔과 다관

Ⅲ. 차와 찻잔

황운 / 취생몽사 / 칠우지감 / 청 운 몽 / 설화 / 술잔과 찻잔 / 차심 / 산사만월 / 취국 / 같은 집 아이들 / 흑유자 / 같은 집 아이들, 편신 이라보 귀얄 / 이국에서 보내온 편집 / 대바구니와 찻잔 / 찻잔 싸게
 

Ⅳ. 찻잔을 만드는 사람들
고인 - 김복만,  김성기, 김종희, 서타원, 신정희, 지순택 (가나다 순)
생존작가 - 광주요, 길성, 김경식, 김기철, 김기환, 김대희, 김선식, 김성철, 김시영, 김영설, 김영식, 김영태, 김윤태, 김정옥, 김종훈, 김평, 노병수, 민영기, 박부원, 박순관, 박영숙, 서동규,
서영기, 설영진, 신경균, 신용균, 신한균, 신현철, 안성모, 양승호, 여상명, 오순택, 우동진, 유길삼, 유태근, 윤성원, 윤창기, 이경효, 이광, 이명균, 이정환, 이종능, 이태호, 이학천, 임경문, 정재효, 정점교, 조태영, 천한봉, 최재호, 홍재표,

Ⅴ. 찻잔이야기 - 개정 증보판
고덕우, 구진인, 김경수, 김억주, 김인용, 박종일, 박철원, 서대천, 송승화, 신봉균, 안주현, 이강효, 이경훈, 이복규, 이인기, 임만재, 임의섭, 임헌자, 장기은, 장형진, 정재헌, 정호진, 천경희, 천향순, 한대웅, 홍성선, 황동구






 

2007년 11월 14일 수요일

2007년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 도서 -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

오늘 오전에 출판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가 2007년도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 도서에 뽑혔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문화관광부 우수 도서로 선정되면 작가에겐 어떤 혜택이 주어지는지는 모르지만 참으로 기쁜 일이다. 이 책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중국 대륙을 종단으로 횡단으로 다녔다. 국내에서 취할 경제적 이익을 모두 포기하고 다녔다. 무엇이 어떤 힘이 나를 그토록 차에 집착하게 하고 조사 분석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 기간에 쏟아 부은 열정이라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그 책을 만드는 과정에 이전에 알고 있었던 대부분의 차에 대한 지식은 지식이 아니라 상식이었다는 것, 그 상식을 살아있는 지식으로 만들기 위해서 차에 대한 방대한 자료에 접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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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칸트는 거실에서 세상과 우주를 논했다는 철학적 비평도 있었지만, 진실된 참을 얻기 위해서는 현장에서의 확인이 비교적 오류가 덜하다는 진리를 조금씩 맛보고 있다. 우리네 산천을 비집고 돌아다니며 세월의 진실을 조금이라도 확인한 것처럼 이 책 안에서 확인한 中原의 진실은 필자가 본 것에 대한 기록을 그대로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중국의 차문화는 참으로 넓고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진실을 가리는 왜곡, 참을 가리는 거짓, 오랜 세월 속에 빛바랜 현실과 기록에 가리워져 있었던 내면을 조금씩 확인할 때 사명감을 가지고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다.

- 중국차 현장의 필담 -

 

나는 중국 대륙을 공략하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을 많이 해왔다.《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보다 한수 위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뇌리에서 지울 수 없다. 늘 어려운 여건을 극복해 나가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생각으로 그칠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 도서가 된 것을 계기로 늘 가까이에서 격려해 주시던 경원스님의 “모든 열정 앞에는 다 녹는다”라 하신 말씀 다시 한번 되새기며 정진해 나갈 것이다. 그토록 출간을 기다렸던 《찻잔 이야기》 개정 증보판의 출간 이틀 전에 받은 낭보여서 더욱 기분이 좋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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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목차는 다음과 같다.

PART Ⅰ. 중국차

01. Ⅰ. 중국의 茶와 산지
02. Ⅱ. 가공방법이나 발효 정도에 따른 중국차의 분류
03. Ⅲ. 중국차에 이름을 붙이는 법
04. Ⅳ. 중국 찻잎의 외형 용어

PART Ⅱ. 녹 차

05. 강산녹모단 06. 개화용정 07. 경산차 08. 경정록설
09. 계평서산차 10. 고교은봉 11. 고장모첨 12. 고저자순
13. 금산취아 14. 남경우화차 15. 노죽대방 16. 둔록
17. 도균모첨 18. 말리용주 19. 말리화차 20. 몽정감로
21. 무석호차 22. 벽라춘 23. 보이청병 24. 복건녹아

25. 서성난화 26. 석순취아 27. 선은공차 28. 수창향차 29. 송양은후 30. 수공예차 31. 신양모첨 32. 쌍정록 33. 안길백차 34. 안탕모봉 35. 안화송침 36. 여산운무 37. 관장모첨 38. 오자선호 39. 용계화청 40. 용정군체종 41. 43호龍井 42. 용정차(사봉용정) 43. 육안과편 44. 은시옥로 45. 임해반호 46. 자양모첨 47. 죽엽청 48. 중경타차 49. 협주벽봉 50. 차운산모첨 51. 천강휘백 52. 청성설아 53. 태평후괴 54. 태평후첨 55. 화산취아 56. 황산녹모단 57. 황산모봉 58. 화산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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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야생 용정차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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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의 명차인 안길백차 유념 공정

PART Ⅲ. 백 차
59. 백모단 60. 백호은침 61. 수미

PART Ⅳ. 청 차
62. 대우령 63. 대홍포 64. 동정오룡차 65. 모해 66. 목책철관음 67. 무이수선 68. 문산포종차 69. 반천요 70. 백계관 71. 백호오룡 72. 본산 73. 봉황단총 74. 사계춘고산차 75. 수금귀 76. 아리산오룡 77. 안계철관음 78. 안계황금계 79. 영춘불수 80. 육계 81. 철라한 82. 수선병차

PART Ⅴ. 홍 차
83. 기흥 84. 의흥홍차 85. 운남전흥 86.정산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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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홍차의 형태 다듬기 공정

PART Ⅵ. 황 차
87. 곽산황대차 88. 곽산황아 89. 군산은침 90. 몽정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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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산황대차 마른 찻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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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산황대차 젖은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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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차

91. 천량차 92. 육보차 93. 보이숙차 94. 상첨차 95. 육안자 96. 흑전차

PART Ⅷ. 중국차를 우리는 차도구

97. Ⅰ. 다기(茶器)종류
98. Ⅱ. 도구와 차 내는 법
99. Ⅲ. 자사호(紫沙壺)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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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Ⅸ. 중국차, 현장의 필담

100. 한국인은 당신들이 처음입니다.
101. 홍차, 그 전설의 고향
102. 기문홍차의 위조공정에서의 손맛
103. 천량차(千兩茶)를 만들며 바로 내일을 보지 않는다
104. 천량차의 원조, 백량차(百兩茶)
105. 황산지역에서 용정차를 만들다
106. 육안과편의 고차수 신(新) 茶
107. 육안과편의 조홍과 복홍
108. 오룡차의 위조, 전통과 현대
109. 유명한 茶만 명차가 아니다
110. 차 상인의 비장품
111. 삼천차를 담은 대나무 바구니
112. 디지털 시대의 육감
113. 600년 된 고차수 봉황단총
114. 화교의 자본으로 차 생산지 개발
115. 보이차의 연대
116. 차밭은 그 차제가 산업공단이다
117. 이제 茶는 자존심이다
118. 반가운 미소
119. 긴압차
120. 차의 보존은 연구자료이다
121. 희망의 차밭, 태평후괴
122.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맛
123. 화원 속에서 자라는 茶나무
124. 대홍포는 옛날의 대홍포가 아니다
125. 넉 잔에 담긴 無我
126. 중국 다예표연 감상기
127. 차를 품평하는 사람
128. 에필로그

차와 차산지  
참고문헌
찾아보기


 

2007년 11월 11일 일요일

일본 이마리 도자기는 우리 선조의 손맛이다

일본의 자기는 1616년 사가현 아리타에서 시작되었다. 아리타에서 제작된 도자기는 북쪽으로 10여 km 떨어진 이마리(伊萬里) 항에서 출하되었기 때문에 이마리 도자기라고 불렸다. 일본 최초의 자기인 이마리 도자기는 가라쓰 도자기 계통의 회유도기를 굽는 가마에서 구워지기 시작했다. 이들 자기는 有田燒(아리타야끼)로서 지금도 그 명성이 이어져 옛 전통을 새로운 전통에 융합해 새로운 도자사(陶磁史)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마리야끼의 뿌리는 정유재란 때 잡혀온 조선의 이삼평을 포함한 사기장들이 1616년 사가의 아리타에 자리잡고 가마를 열어 도자기를 구워냄으로써 시작되었다. 당시 중국 명나라(만력년간 1573˜1629)때 멸망하고 청나라가 세워지는, 중국의 왕조 교체로 인한 사회 혼란이 도자기 생산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당시 주로 징더전(景德鎭)의 청화백자를 유럽으로 수출하고 있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1652년 중국에서 자기를 구입할 수 없었다. 처음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서 필요한 자기를 수출하다가 일본 자기의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고 유럽 전체에 수출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의 근대 자본의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마리 도자기들의 외관을 보면서 단순히 일본 찻잔이라고 외면하는 경우가 있다. 도안에 관해서는 일본내의 국지적인 생각일 뿐이다. 근원은 동북아시아에 있으며 그 양식은 중국, 조선, 일본 3국이 공용했던 것이다. 더구나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람들은 일본의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네 선조들이었다. 당시의 그릇은 같은 조류의 선상에 있었으며 오히려 이마리 도자기들은 우리 선조의 숨결이 살아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대륙풍의 아름다운 곡선과 섬세한 청화의 모습은 특징과 장점을 취하는 일본인들의 요구였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 지금도 회자될만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 것은 우리네 장인들의 손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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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평 :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리타 도자기의 역사를 시작한 사기장으로서 백자의 불모지에 백토광(白土鑛)을 처음 발견하고 덴구다니에서 가마를 걸고 백자를 처음 구워낸 사기장이다. 현재 14대 이삼평은 교토 공예 전문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2007년 10월 31일 수요일

다식(茶食) - 먹을 것인가 볼 것인가

다식(茶食)

차인들의 찻자리에서는 흔히 다식을 겸한다. 어떤 知人이 말하기를 ‘다식을 먹을 것인가, 볼것인가를 고민할 때가 많다’라고 하니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식은 차를 마시면서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꺼리’이다. 감상이 치우치면 접근이 어렵다. 접근이 어렵다면 그것은 이미 음식이 아니다. 주인과 객이 만나 허물없자하고 만나 차를 나누는 자리에 정신보다 형식이 치우친 음식이 놓인다면 그 또한 음식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다식은 다식 다워야 한다.

일본의 화과자와 우리의 다식이 그래서 다른 것 같다.

마음을 주듯, 편안한 다식이어야 한다.

 

2007년 10월 26일 금요일

스승의 작지만 큰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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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 통도사 성보 박물관 옆에서
제자와 함께 여행하는 자리에서도 스승은 늘 제자에게 바른 길을 일러 주려고 한다. 국적이 다르면 문화도 다르지만 차도구를 사용하는 것에 있어서는 한 길이라고 생각하였는지 스승은 한국에서 평범한 물 바가지를 이용하여 물을 마시기 전 씻는 자세를 가르쳐준다.

물바가지를 헹구어 내며 옆의 공간에 물을 부셔버리는(쏟아). 행위와 다른이에게 물이 튀지 않고 자신 앞으로 손잡이까지 씻어 내며 물을 흘려버리는 것은 결국 나 이외에 다른 이들까지 배려하는 행동이다.


우리나라는 여러모로 급하게 변화되는 사회변동을 겪다보니 전통속에서 그러한 여유와 베려에 대한 행위는 거의 잊혀지다 시피했다. 우리네 전통속에 어찌 그 선생의 행위와 같은 것이 없으랴.
새삼 선생님의 행동으로 그 옆을 지나던 이까지도 한 수 배울 수 있으니 차인의 행동은 그야말로 이 사회에서 맑은 물 한자락, 청명한 한 줄기 바람아니겠는가. 작지만 큰 행동에 그저 스승님께 머리숙여 감사할 뿐이다.


200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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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계경 절강대 전 교수와 중국다예연구중심 원장 김영숙, 그리고 회원 두 분과 함께 통도사 성보박물관 초청 강연에 참석하여 강연 전 박물관 앞에서 물 한 잔 마시러간 자리에서...

2007년 10월 25일 목요일

[논문] 한 . 일 煎茶圖(전차도)에 나타난 차문화 비교연구

  

제11회 무아차회 기념 국제학술대회


고연미(순천대학교 강사)는 한․일 煎茶圖(전차도)에 나타난 차문화 비교연구를 발표하였다.

- 朝鮮後期와 江戶時代를 중심으로 -


연구자는 서론에서 “본 연구에서는 차와 관련된 그림에 대한 명칭으로서 차그림(茶畵)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차그림을 ‘茶, 製茶, 茶法, 그리고 차도구를 포함한 차문화를 발견할 수 있는 그림’으로 정의내리고자 한다. 먼저 조선후기와 에도시대의 회화사적 배경과 특징을 살펴보고 조선통신사를 통한 회화교류와 그 영향관계를 알아보겠다. 다음으로 한일 전차도의 유형적인 주제를 산수, 초옥, 야원, 실내로 분류하고, 다로를 중심으로 차 준비하는 사람의 동작을 회화적으로 분석하고, 다법과 다도구의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한 일 전차도에 나타난 차문화를 비교 연구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특성상 계회도와 같은 기록화와 일본에 전해오는 전차도는 주제논외로 하였음을 밝혀둔다.”고 밝히고 차그림으로서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다루었다. 특히 조선후기와 에도시대, 조선통신사를 통한 繪畵교류로 구분하였다.


조선후기 회화에서 엿볼 수 있는 특징으로 조선적인 화풍과 함께 중국의 차 그림의 구도나 준법, 그리고 인물묘사 등이 유사한 것도 볼 수 있다. 이는 화업 수련의 한 지침서 역할을 한 중국화적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연구자는 정리하였다.


연구자는 조선후기와 에도시대의 탕관과 다로는 서로 차이점이 보이고, 현대와도 차이점이 크다. 먼저 조선후기 차그림에 보이는 다로위에 놓인 탕관은 상파형과 후파형만 보이고 횡파형은 나타나지 않는다. 다로의 모양도 앞면이 둥글거나 앞면이 타원형으로 크게 파인 풍로가 대부분이고 모두 실외에서 사용하였다. 이는 에도 시대와도 차이가 나는 사항이지만 현대의 다도구와도 상당한 차이점을 보이는 상황이다. 오늘날 주로 사용하는 횡파형 다관이나 통풍구 없이 열린 화로는 조선후기 차그림에 나타나고 있지 않다.고 한다. 비교설명하였다.


- 고연미 연구자의 “한․일 煎茶圖(전차도)에 나타난 차문화 비교연구”는 요즘 전차도에 대한관심과 차그림에 대한 연구자에게는 선행연구지로 역할을 할 것으로 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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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13일 원광대학교 송산기념관에서 “세계의 차문화”라는 주제로 제11회 무아차회기념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학술대회는 공식적인 무아차회 행사를 마치고 오후 2시에 열렸다.




2007년 10월 23일 화요일

[논문] 무아차회 기념 국제학술대회 논문 발표

제11회 무아차회 기념 국제학술대회


원광대학교 송산기념관에서 “세계의 차문화”라는 주제로 제11회 무아차회기념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학술대회는 공식적인 무아차회 행사를 마치고 오후 2시에 열렸다.

필자는 현대 한국 찻자리 연구(2002~2007년)를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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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는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사찰, 사기장, 차인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차를 마시는 찻자리를 기록하고 사진으로 담아 우리 시대 차문화의 한 장르가 되는 현대 한국의 찻자리 문화의 현장에 대하여 현장 답사와 분석을 통해 자료를 정리하였다.

찻자리라고 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보이고, 또 특별한 경우에 대접하거나 대접받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차문화의 확산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에 대하여 현대 차생활의 보급을 통해 여러 가지 노력이 나타나고 있지만 한정된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많은 이들의 간접 경험의 기회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빈약한 실정이다.

특별하게만 보여지는 의례적인 찻자리라고 하는 두려움 등을 조금이나마 희석시키고 우리 시대 찻자리 유형에 대한 연구와 앞으로 나아갈 바람직한 찻자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목적을 가지고 한국에서의 가장 빈번한 찻자리의 영역을 세 부류로 나누어 조사, 분석, 고찰한 것으로 발표를 하였다.

[표6] 사찰에서 마시는 차, 차인, 사기장을 세부류로 구분하여 찻자에서 마시는 차, 찻자리에서 사용되는 다식, 탕관, 찻상을 구분하여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을 조사한 내용으로 발표하였다. 참고로 [표6]과 같은 방식으로 도표화하고 아래와 같이 설명하였다.


<녹차의 음용은 2003년 이후 하향 곡선을 보이고 있으나 보이차는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일본 말차 최근에는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를 볼 수 있다. 중국차와 같은 갑작스런 붐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규범적인 행다법에 관심 가지는 차인들이 부산, 경남,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늘어나는 추세이다. 향후 말차 소비는 증가될 것으로 보인다.>

찻자리 연구에 관심 있는 분들은 공동 연구에 참여하는 방법도 강구하고 있다. 참여하여 공동 연구자로의 역할 을 하고자 하는 분은 연락을 주시거나 흔적을 남겨두기 바란다.

이 시대 차문화를 연구하는 필자는 향후 지속적으로 우리시대 차문화를 연구발표해 나갈 것이며, 앞으로 출간될 저서도 "차문화 코드" 1. 2, 3 으로 나올 것이다.

2007년 10월 17일 수요일

천량차(千兩茶)

               냥쭝이라는 무게단위는 중국대륙 공통의 환산단위이다. 열냥, 백냥을 넘어 천냥이라는 단위는 큰 단위가 아닐 수 없다. 큰 무게를 가진 이 차(茶)는 과연 어떤 소비자들에게 가능했을까?

천량차는 쉽게 말하면 경제의 바로미터라고 할 것이다. 즉, 소비가 활성화되는 것은 곧 경제활성을 의미한다. 중국이 크니까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냐라는 반문이 나올 수 있지만 정작 큰 소비는 개인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이 차는 名茶의 반열에 낀 茶가 아니다. 하지만 개인이 아닌 많은 이들이 즐긴 증거가 바로 무게에서 드러나고 있다. 자그마한 전차로 생산하는 것은 일반적인 공정과 다를바 없다. 그러나 마치 죽부인같은 포장에 천량차가 만들어 지는 것은 공정의 형태가 곧 문화의 형상임을 알려준다.


1958년이후 호남성 백사계
(白沙溪) 차 공장은 천량차가 발효가 늦다는 점을 감안하여 천량차(千兩茶 ․ 花卷茶)생산을 대신하여 무게 2kg의 전차(전차 ․ 화전차花磚茶)를 기계 생산하였다. 차 시장에서는 전차가 천량차를 대신하였다. 천량차와 전차는 같은 긴압차이면서, 흑모차를 원료로 사용하고 있지만 가공 방법과 품질의 요구가 다르고, 상품의 특색이 각기 독특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긴압차이다.


1983년 호남성 백사계 부창장 왕형남(王炯楠)이 천량차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우려하여 견본 생산을 건의한 것을 백사차창에서 받아 들였다.


1950년대에 차창에서 기술을 가진 자들을 다시금 불러모아 천량차를 제작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茶에 대한 자신이 없다면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조직을 구성하여 과거의 천량차를 재현하려는 기술자들은 이미 70대가 되어서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천량차의 역사적인 계승을 위해 조직을 안배하고 초여름에 시작하여 가을 중엽까지 약 4개월 정도만 생산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면서 천량차는 1982년까지 중단되었던 것을 1983년에 재현이 되었고, 1997년부터 재생산이 되었다. 그리고 2005년 현재까지 천량차의 마지막 공정인 독특한 비법으로 만드는 포장은 5명이 한 조가 되어 한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다.


그만큼 근본적으로 차에 대해 추호의 의심이 없다. 많은 이들이 선별된 깨끗한 흙바닥에서 공동으로 작업을 한다. 대나무가 사람의 살 보다 단단하기에 그들은 종아리를 두터운 헝겊으로 무장을 한다.

길죽한 대발을 다시 대나무로 감싸 고정시키는 일은 옆에서 보는 것만 해도 보통 작업이 아니다. 그 과정을 거쳐 거대한 긴압차가 만들어지게 되면 대나무와 옥수수잎에 긴밀한 압착을 견뎌내면서 세월을 보내며 발효가 시작된다.

아니 그 곳에 차가 들어와 증기를 쐬면서 이미 천량차의 운명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람이 많다고는 하지만 기술있는 이는 드물다.

그러한 기술을 가진 이들이 모여 일을 하기는 더욱 어렵다. 더욱이 차를 만드는 독특한 기술을 눈앞에서 보게 되면 일상 편히 대하는 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한동안 만들었던 전차는 운반에, 나눔에, 소유에, 발효에 편했지만 부족한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발효는 그 차가 만들어지는 모든 주변 재료가 정확히 갖추어지고 난 후에도 그에 알맞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금 그들의 발에 굴려 만들어지는 천량차는 이제부터 기다릴 것이다.

누가 조급증을 낸다 하더라도 굳건하게 시간을 채울 것이다.

그들은 천량차를 만들며 바로 내일을 보지 않는다.

그들의 눈빛은 오랜 시간 뒤를 쳐다 보고 있다.

중국의 차 상세보기
박홍관 지음 | 형설출판사 펴냄
중국 차 입문서. 이 책은 중국에서 차가 생산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12개 성(절강성, 광동성, 운남성, 안휘성, 대만 등)을 각각 수차례 반복하여 조사한 중국차와 그 문화에 대한 실질적인 연구 보고서이다. 차...



필자가  중국차 제조공정 사진 작업에서 가장 힘들게 작업한 것이지만 실제 한국에서 중국차의 정보에 오류가 너무 난무하기에 현장을 다녀오고 기록한 입장에서 찬량차 부분을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 형설출판사> 전제 하였습니다.


2007년 10월 16일 화요일

[무아차회] 2009년 개최국으로 미국 “센프란시스코”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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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국제무아차회는 미국 센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되었다. 14일 폐막식에서
한국측에서 깃발을 미국차문화학회 (American Tea Culture Association)회장인
Chiung Chin Lim 에게 넘겼다. 차기 개최지에 대한 회의는 2007년 10월 12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채용장 총재가 참석한 가운데 한국 일본 대만 회원들이 참석하여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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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차문화학회 회장(임영지)

국제무아차회(無我茶會 총재 채영장)는 이번 한국대회(대회장 이진수)에서 2009년 차기 국제무아차회 개최국으로 미국 “센프란시스코”를 확정했다. 무아차회는 1989년 대만에서 시작돼 격년제로 열리는 순수 민간차원의 국제교류행사로 본부는 대만에 있으며 무아차회의 근본정신을 통해 나눔과 평등 정신으로 전 세계가 네트워크로 이어지고 있다.


 

[특별한 찻자리] 세계 11개국에서 참가한 무아차회 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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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에모토 슈운시쯔  마사끼 기칸(75세), 중국 행다법 정립자 동계경 교수

제11회 국제무아차회(無我茶會 총재 채연장), 한국대회(대회장 이진수)가 12일 서울 교육문화회관에서 환영식을 시작으로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마쳤다.
13일 전북익산 원불교 중앙총부 잔디밭 광장에서 일본, 중국, 싱가포르, 미국 등 11개국에서 모인 160명과 내국인 250명이 함께 찻자리를 하였다. 무아차회는 1989년 대만에서 시작하여 격년제로 열리는 순수 민간차원의 국제교류행사. 본부는 대만에 있으며 무아차회의 근본정신을 통해 나눔과 평등 정신으로 전 세계가 네트워크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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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국제무아차회 채영장(蔡榮章) 총재의 단아한 찻자리

전북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펼쳐진 첫번째 무아차회에 이어 14일 서울 창경궁내에서 두번째 무아차회를 가졌다. 한국의 고풍스런 창경궁에서 오백명의 차인들이 묵묵히 차를 우리고 나누는 모습은 그 자체로서 장관이었다. 무아차회는 일반 다도와는 달리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시작을 알리는 첫번째 징이 울리면 참가자 모두 말없이 차를 우리고 세 잔을 따라서 자신과 오른쪽 두 명에게 차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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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인의 찻자리(일본, 나까지마 기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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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전차도
두번째 종이 울리면 참가자 전원이 차를 우려서 소반에 들고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찻잔을 여분으로 준비하는 것은 도자기 잔이 아니라 작은 종이컵을 준비한다. 남녀노소, 차를 잘우려 내고 못우려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 누구에게나 차를 대접하고 함께 즐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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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어린 아이의 찻자리
종료를 알리는 세번째 징이 울리면 다구를 정리한다. 무아차회는 모든 찻자리의 배치는 추첨에 의한 임의 배정 방식으로 정해지며 모든 사람이 주인이자 진행자로 참가한다. 차를 내는 법이나 차를 내는 종류에 어떤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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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차회를 마치고 각국의 회원들은 서로 기념품을 주고 받으며  사인을 해주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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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경에서 온 한양 양의 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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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임숙연 씨와 옆좌석에서 찻자리를 한 일본 차인과의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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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찻자리가 원을 그리며 첫번째 징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2007년 10월 3일 수요일

특별기획전 - 요시노가리, 일본 속의 고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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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도 국립중앙박물관 기획특별전

[요시노가리, 일본 속의 고대 한국]


ㅇ전  시  명 : 요시노가리, 일본 속의 고대한국            YOSHINOGARI, Ancient Korean Culture in Japan

ㅇ전시  기간 : 2007. 10. 16(화) ~ 12. 2(일)

ㅇ전시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 2,000년 전 바다를 사이에 두고 교류했던 한 ․ 일 양국의 문물 600여점 비교 전시

- 일본 최대의 마을 유적인 요시노가리吉野ケ里 유적 출토 유물 국내 최초 공개


국립중앙박물관은 2007년도 기획특별전 <요시노가리, 일본 속의 고대 한국>을 일본 사가현 교육위원회와 공동으로 10월 16일부터 12월 2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00년 전의 한·일 양국 문물을 비교 전시하는 최초의 기획특별전으로 양국의 유물 600여점이 전시된다. 특히 일본 유물 중에는 요시노가리 유적 출토 세형동검 등 국가중요문화재 20여점이 포함되어 있다.


이 특별전에는 일본 야요이 문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독무덤, 토기, 꺽창, 본뜬거울 외에 한반도와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인 덧띠토기, 청동기 거푸집, 한국식동검 등이 비교·전시된다. 이와 함께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출토된 일본 야요이식 토기와 청동기도 전시되어 당시의 활발한 교류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또 한반도에서 유입된 벼농사와 농경기술로 출발한 초기의 작은 요시노가리 마을이 야요이 후기(기원후 1세기~기원후 3세기)에 대규모의 주거 공간과 마을 공동의 제사 공간, 생산물 보관창고와 시장 등을 갖춘 도시 또는 초기국가의 중심 마을로 번창한 발전과정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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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적지인 요시노가리

요시노가리유적은 일본 북부 규슈의 사가현에 위치한 일본 최대의 마을유적으로, 1986년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 발굴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 규모와 발굴성과는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유적에서는 일본 야요이시대彌生時代(기원전 5세기~기원후 3세기) 문화의 특징과 한반도와의 교류를 증명하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특히 요시노가리유적은 이 시기 한반도의 농경문화가 일본에 전래되어 일본 고대사회 문화의 발전에 미친 영향을 밝혀주고 있다.


전시는 크게 한반도의 농경문화와 일본 전파, 야요이 마을의 탄생, 고대 한반도와 야요이 마을의 생활, 한반도 출토 일본유물과 한일문화교류 등으로 구성된다.


제1부 ‘한반도의 농경문화와 일본 전파’에서는 진주 대평리, 부여 송국리 등 벼농사 관련 유적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벼농사의 시작과 발전을 밝히고, 일본 야요이시대 초기의 벼농사 유적인 나바다케菜畑유적 출토품을 전시하여 일본의 야요이시대 벼농사 문화가 한반도 벼농사의 일본 전파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제2부 ‘야요이 마을의 탄생’에서는 요시노가리 유적의 초기 출토품들을 통해 요시노가리 유적의 탄생이 한반도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이와 함께 현재 복원된 요시노가리 유적을 사진 자료로 소개하여 관람객들이 요시노가리 유적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제3부 ‘고대 한반도와 야요이 마을의 생활’에서는 한국식동검, 다뉴세문경, 점토대토기 등 한반도와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들을 한반도 출토 관련 유물과 비교 전시하여 당시 문화교류의 양상이 어떠하였는지를 살필 수 있도록 하였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출토 일본유물과 한일문화교류’에서는 한반도에서 출토된 일본 야요이 시대 유물을 통해 한·일 양국의 문화 교류가 가지는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이번 전시 기간 중에는 곡옥 만들기, 흙피리 만들기 등 당시 한반도와 일본 사람들의 생활상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체험행사와 전시를 관람하면서 문제를 풀어보는 교육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또한 11월 10일에는 한·일 양국의 관련 학자들이 참여하여 당시의 문화 교류상을 되짚어보는 국제학술심포지엄도 예정되어 있다.


이번 전시는 2008년 1월 1일부터 2월 11일까지 일본 사가현립미술관에 순회 전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옮긴 후 다양한 기획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한 일 양국의 문물 600여점이 비교 전시된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또 한 번의 역작을 볼 수 있는 것에 벌써 부터 기대가 됩니다. 역사물에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관 바랍니다.

박물관에서 전시 리뷰를 올려주었습니다. 참고 하십시요

요시노가리吉野ケ里유적은 일본 북부 규슈의 사가현에 위치한 일본 최대의 고대 마을유적으로, 1986년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 발굴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 규모와 발굴성과는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유적에서는 일본 야요이시대彌生時代(기원전 5세기~기원후 3세기) 문화의 특징과 한반도와의 교류를 증명하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야요이시대 전기에는 소규모였다가 야요이시대 후기가 되면 넓이 40만㎡가 넘는 대규모의 마을로 발전하게 된다. 이 마을에는 지배자의 생활 공간 및 마을의 제사 공간, 수확물 등을 보관하고 주변마을 사람들과 교역交易을 하였던 시장 겸 창고 구역 등이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규모로 보아 야요이후기의 요시노가리 유적은 일종의 도시都市 또는 초기 국가의 중심 마을 역할을 한 것으로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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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식동검韓國式銅劍]

길이 44.8cm(오른쪽), 일본중요문화재, 사가현 요시노가리(吉野ケ里)

일본 요시노가리 유적의 분구묘에서 출토된 한국식동검이다. 한국식동검은 청동 혹은 백동으로 만든 단검으로, 검몸劍身의 폭이 좁고 끝이 뾰족하며 양날이 직선적이어서 세형동검細形銅劍이라고도 한다.


한국식동검은 기원전 4세기 충청도지역에서 처음 나타나는데, 종종 한국식동검문화라고 불리는 특징적인의 유물과 함께 출토된다. 처음에는 부채날도끼扇形銅斧·거친무늬거울多紐組文鏡등과 함께 출토되지만 이후 꺽창銅戈 ·네모도끼銅斧·잔무늬거울多紐細文鏡·각종 청동방울靑銅鈴 등이 새롭게 나타난다.


이러한 한국식동검은 일본 규슈 북부지역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일본 야요이시대 유적에서 발견되는 한국식동검·투겁창·꺽창·거울·방울·옥·덧띠토기·검은간토기 등의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다. 야요이시대 규슈 북부에서 유력한 집단 중의 하나인 요시노가리 유적의 거대한 분구묘에서도 한국식동검과 유리대롱옥이 출토되어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를 얘기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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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띠토기粘土帶土器]

높이 18.7(좌)·23.4cm, 아산 남성리(좌)·사가현 요시노가리(吉野ケ里)
아가리에 점토띠를 덧붙여 만든 토기이다. 덧띠토기는 한강 하류에서 금강 하류에 이르는 중서부 해안지역에 처음으로 등장하여 주변지역으로 전해지는데, 영·호남 등 한반도 남부지방뿐만 아니라 규슈를 중심으로 한 일본열도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요시노가리 유적에서는 덧띠토기 외에 한반도계 무문토기도 함께 출토되어 당시의 교류상을 대변해 주고 있다.


2007년 9월 30일 일요일

조선 시대 계룡산 분청사기 전시회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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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의 기획 전시인 [계룡산 분청사기 전시회]는 일반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을 통합적으로 전시를 한 것 같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전시를 하기 때문에 그릇의 아래 쪽에 명문이 있는 종류별 전시도 가능했으며, 제작 기법에 따른 종류의 설명을 실물과 그림을 함께 보여주었기 때문에 더욱 알찬 기획전으로 보였다.

계룡산 분청사기
Buncheong Ware from Mt. Gyeryong Kilns

 ㆍ일시 : 2007. 9. 18 ~ 2008. 2. 17
 ㆍ장소 : 미술관Ⅱ 분청사기실
 ㆍ전시대상 : 학봉리 가마의 1927, 1992년 발굴품 등 총 60건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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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도자기는 분청사기와 백자이다. 분청사기는 고려 말의 상감청자가 쇠퇴하면서 백자와는 다른 형태와 문양, 구도를 가진 것으로 매우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도자기이다. 15세기에서 16세기 중엽까지 만들으며, 귀족적인 고려청자와는 달리 서민적이고 순박한 맛을 지니면서도 활동감과 생동감이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1467~1468년 무렵 경기도 광주에 백자(白瓷)를 생산하는 관요(官窯)가 운영되면서 왕실과 관아에서 필요로 하는 자기의 공급은 광주분원(廣州分院)에서 맡게 되자 관장제수공업체(官匠制手工業體)로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분청사기의 생산은 점점 소규모화되면서 민간용을 주로 생산하게 되었다. 국가가 주로 백자를 생산하면서, 그 영향력으로 지방 가마들도 점차 분청사기 대신 백자를 만들게 되었다.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제작된 백자는 순백자의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조선 도자 문화를 이끌었다. - 전시장 내의 설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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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인화 문늬 접시 포개구운 조각
분청사기란 말은 1930년대 고유섭(高裕燮:1904~1944)이 당시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미시마[三島]’란 용어에 반대하여 새롭게 지은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약칭(略稱)이다.

박물관에서 하는 기획전을 가능한 빠지지 않고 관람하는 편이다. 보통 3번 이상을 보는데 그럴때 마다 느끼는 점은 이러한 전시회에는 일본인들이 참 많이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우리나라 것이라서 귀한 줄 몰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렇게 한자리에 모아놓고 전시는 것 자체에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잘 차려놓은 상을 보지도 않고 관심도 기울이지 않다고 보니까 무엇이 좋고 나쁜지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조차도 없는 것이다.

개인적인 바램이 있었다면 차(茶) 하는 사람으로서 계룡산 분청사기가 차와 관련하여 일본에서 사용되고 있는 다도(茶道) 용 그릇 종류가  전시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이 일을 주관해 오신 분께 감사드리는 바이다.

학봉리 가마의 도자기 굽는 방법
학봉이 가마에서는 그릇을 대체로 포개 구웠다. 나라에 바치는 공물용 그릇에도 포개 구운 흔적이 발견된다. 그릇을 포개 구울 때에는 그릇 사이에 태토 비짐이나 굵은 모래를 받쳤다. 귀얄 및 철화 분청사기는 굵은 모래를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있다. 다만 흑유 항아리는 항아리들의 손쉬운 분리를 위해서 항아리의 굽 주변에 백토를 바르는 방법으로 제작하였다.

이 시기의 연보
1455년 중국에서 회화청을 구입하여 청화백자를 만든다.(세조실록)
1467년 사옹방을 사옹원으로 개칭하다(세조실록)
1481년 광주 관요에 해마다 사옹원 관리가 그림 그리는 사람을 인솔하고 가서 궁중에서 쓸 그릇을 감 독하여 만든다.(동국여지승람)
1504년 광주 백자가 최고이며 그 다음이 고령 백자다.(용재총화)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 토산물조에 자기소32개소, 사기소 4개소, 도기소 13개소 기록
1537년 함경도 육진까지 모두 백자를 사용한다(중종실록)

분청사기는 분장과 문양을 나타내는 기법에 따라 7가지로 분류한다.

1. 상감기법(象嵌技法)
도자 표면을 선이나 면으로 판 후 백토나 자토(裏土)를 감입(嵌入)해서 무늬를 나타낸다.

2. 인화기법(印畵技法)
문양을 도장으로 찍고 백토분장(白土粉粧)을 한 후에 닦아내어 찍힌 무늬가 희게 나타낸다.

3. 박지기법(剝地技法)
백토 분장 후 문양 이외의 백토를 긁어내어 태토의 어두운 색과 분장된 백색을 대비시켜 무양을 표현한다.

4. 조화기법(造花技法)
백토 분장 후 선으로 무늬를 새긴다.

5. 철화기법(鐵畵技法)
백토 분장 후 철분(鐵分)이 많은 안료(顔料)로 무늬를 그린다.

6. 귀얄기법
귀얄로 분장만 한다.

7. 덤벙기법
백토 물에 담궈서 분장한다.

이러한 기법들은 시대성과 지역성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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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25일 화요일

목책철관음 관광다원의 성공 사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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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차(茶) 심포지엄 발표자 : 오영순

"대만 목책철관음 관광다원의 성공사례" 발표가 지난 2007년 9월 8일 서울유스호스텔 대회의실, 서울 차 심포지엄에서 오영순(소슬다원 대표)씨의 “목책철관음 관광다원의 성공 사례 연구”에서 이 시대의 차문화를 연구하는 많은 학생 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혼동하기 쉬운 목책철관음에 대한 깊이있는 내용을 발표하여 참석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발표문 가운데 목책철관음의 유래와 홍배(烘焙)에 대해서 요약해보면, 다음돠 같다. 5만 년 전 중국 대륙의 땅덩어리와 맞붙어 있었던 때부터 대만에는 토착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16세기 네델란드 동인도회사가 한족의 이민을 장려하면서 한인들이 “날짜와 문자”를 가지고 대륙에서 대만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토착민족은 고지대에 고산족과 평지에 살았던 평포족으로 나뉘는데, 지금의 목책지구 부근의 신디엔[新店]계곡 상류에 고산족이던 태아족이 살고 있었다. 청 강희 말년에 복건성 안계에 민란(民亂)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대만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에 고씨, 임씨, 장씨족들이 泉州府 안계현 大坪에서 민란을 피하여 지금의 목책지구 안쪽의 景美 계곡에 대단위로 거주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원주민인 태아족의 침입을 두려워하여 경미계곡 오른쪽(현재 도남교)부근에 촌을 이루고 살면서 나무 말뚝을 박아서 울타리를 만들어 이들을 방어하였다고 다. 이것이 오늘날 목책(木柵)이라는 지명을 얻게된 유래인 것이다.

제조공정에서 발표자는 공정의 순서를 차청(茶菁), 채적(採摘), 일광위조, 실내위조, 살청, 초유, 초건, 복유(覆揉) 또는 포유, 홍배(烘焙)로 나누었다. 이 가운데 마지막 공정인 홍배가 중요한데, 목책절관음에서는두가지로 구분한다.

1) 탄로(炭爐) 홍배

목책의 장지장씨 집에는 증조부가 만든 100년이 넘는 탄로가 있는데 전통부뚜막식 홍배실로서 상사수(相思樹)로 숯 재료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목탄 홍배는 다농으로 하여금 너무 고된 작업으로서 열이 아래쪽에서만 올라오니까 고르지 못하여, 30분 마다 뒤집어 주어야 하기 때문에 다농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고된 작업이 아닐 수 없었다.

2) 열풍기계식 홍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목책 철관음은 목탄 홍배에서 올라오는 탄배향 때문에 아무리 차가 좋아도 소비자의 취향에 부합되기 힘들었다. 그러나 기계식 열풍 홍배기를 사용하면 장시간 홍배시에도 비교적 맛이 깔끔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다농들은 최근에 이 홍배기로 대체하여 차를 제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10일에서 20일에 걸쳐서 장시간 정밀 배화를 하는 다농이 많기 때문이다. 1회에 24시간 홍배하고 3일 정도 차를 쉬어 주고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5회에 걸쳐서 100시간 이상 홍배를 하는 다농이 많다. 이 과정 중에 차를 담아 방치하는 과정에서도 다시 후숙이 조금 일어나기도 하며, 맛이 좋아지고 차엽의 선택이 진한 암갈색으로 100~110℃사이에서 홍배를 진행한다. 여기서 철관음의 청기가 사라지고 쓴맛 이 제거되기에 이른다.

쓴맛은 교반하고 포유과정에서도 산실되지만, 홍배과정에서 차엽속에 잔존하는 카페인 성분이 대량으로 기화하기 때문에 카페인이 줄어들어 마셔서 편안한 차가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남아 있던 잔여 수분이 홍배를 인하여 최저치로 감소하고 차잎은 더욱더 긴밀하게 오므라들면서 엽저가 쪼글쪼글해진다. 따라서 완성품의 차를 다호에 넣을 때 옥구슬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를 들어 볼 수 있다.
상기의 발표문에서 보면 우리가 대만차 가운데 메니아들이 즐겨 마시는 목책철관음이 얼마나 힘든 과정을 소화해서 나오는 가를 알 수 있다. 나는 중국차 제조 공정을 촬여해 보면서 늘 느끼는 점이지만 중국차가 앞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근원적인 이유는 각 차의 종류마다 홍배의 기술이 오랜 세월 각 농가의 축적된 노하우로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시장 경제에 맞추어 내는 점이다. 우리는 기술적인 표준이 안되어 있어면서도 늘 손 맛이 좌우한다는 어정쩡한 답변 만이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차로서는 선직국이라 할 수 있는 대만 다농들의 삶을 오랜기간 직간접적으로 느끼며 함께 한 시간이  이러한 내용을 만들 수 있었다. 이번 발표자의 발표문은 이러한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2007년 9월 23일 일요일

홍차 - 영국 애프터눈테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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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자 : 전정애]
한국 차산업 발전을 위한 차 심포지엄에서 발표자 전정애(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예다학과 석사과정)는 영국의 AFTERNOON TEA에 관한 고찰을 주제로 하였다. 영국 정통 애프터눈 티 문화를 살펴보고 바르게 이해하고자 하는데 이의를 두고 한 내용이다고 밝힌 발표문은 국내 전문 자료가 부족한 가운데 향후 홍차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본다. 우선 한국에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영역에서 조금이라도 실질적인 차 생활에서의 접근을 시도하려 했고, 원서를 번역하고 영국을 방문하는 노고가 베어있었다.

발표자는 영국의 티타임을 아홉가지로 분류를 하였고, 티타임을 중심으로 사교문화를 꽃피워 왔던 영국은 하루에 7~8회나 티타임을 가질 만큼 홍차를 사랑해 왔다고 한다. 영국의 티타임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얼리모닝티(early morning tea, bad tea), 브렉퍼스트티(breakfast tea), 일레븐즈티(elevenses tea), 미드티(mid tea), 애프터눈티(afternoon tea) : 오후 2~4시의 화려한 티타임으로, 귀족들의 수준 높은 생활 문화를 기반으로 발전된 만큼 화려하고 푸짐한 티푸드(tea food) 타임을 갖는다. 애프터디너 티(after dinner tea), 나이트 티(night tea) 이와 같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7~8회의 티타임에서 오늘 날 하루 3~4번 정도의 티타임으로 그 횟수가 간소화 되었다.

일상의 애프터눈 티
차는 서민적 보편성과 제왕적 귀족성의 양면성을 지닌 특성상 일상적인 애프터눈 티를 즐기는 곳은 서민적 정서를 반영한 비교적 경제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을 말하며 크게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TEA ROOM, TEA SHOPS, TEASALONS, CAFE TEAS, MUSEUM TEAS로 나눌 수 있다. 다방 차가게, 호텔, 박물관 등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상 생활 속에서 또한 어느 장소에서든 애프터눈 티를 즐기고 있다. 이런 곳은 예약이 필수 사항이 아닌 곳이 대부분이다.

특수한 애프터눈 티
차를 마시는 것은 그들의 생활이기에 학문적인 연구를 한다거나 다법을 고안하는 일은 드물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차를 즐긴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다만, Edware Bramah 씨가 English tea ceremony를 행하고 있다는 것과 유명 호텔에서 영국 정통 애프터눈 티가 행해지고 있으므로 면면히 그들의 문화가 이어짐을 볼 수 있었다.

-중략-
이런 내용 속에서 차도구(teapot, sugartong, tea strainer 등)는 모두 은제품을 사용하며 고급스러움과 품위를 더할 뿐만 아니라 열전도가 잘 되는 은제 티팟으로 우린 차는 따끈하게 홍차를 마실 수 있어 차맛이 한결 좋음을 느꼈다.

-하략-
발표자는 이 논문을 위해서 현지 홍차 문화를 접하고 온것이다. 발표가 끝나고 마지막 말이 차도구를 연구하는 나의 입장에서 늘 귓가에 맴돈다.

전통을 지향하는 차문화 경영학과에서 홍차를 위해서 외국 차도구를 권장해야 하는가?

 

2007년 9월 20일 목요일

무아차회 한국국제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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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차회(無我茶會)란?

1989년 중국과 대만에서 시작되어 격년제로 열리는 무아차회는 여러사람이 함께 모여 마시는 찻자리의 형식을 최소화하여 차 마시는 행위를 차별없는 평등한 마음으로 세계 모든 사람이 소통(Communication)하는 순수한 민간국제교류행사다.

참가국가는 중국 대만을 비롯하여 한국 일본 이태리 미국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 세계각국의 차문화인들이 참여하는 세계적인 차회로 거듭난 무아차회는 각회원국에서 격년제로 개최된다. 무아차회는 또 공식적인 모임외에도 각 회원국간의 교류가 끓임없이 열리고 있는 등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한 국제차회활동이다.

2006년 6월27일 대만을 방문하여 2007년 10월에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국제무아차회[회장 채영장(蔡榮章)]협약식에서 채영장 회장과 한국국제차문화학회 이진수 이사장과의 협정식 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 현장에는 박희준(차와 문화 주간), 설옥자(가예원 원장) 손연숙 교수가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제 국제무아차회 한국대회 일정이 공개되면서 한국내 많은 차인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무아차회 7대 정신으로 알리고자 한다.

무아차회 7대 정신
1. 모든 사람이 주인이자 진행자가 되어 정해진 규칙에 따라 함께 진행한다.2. 자리배치는 추첨에 의한 임의 배정방식으로 정한다. 이는 계층, 인종, 성별 연령등 어떠한 차별이나 구별도 없는 ‘무아차’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다.

3. 행다법이나 차의 종류에 어떠한 규정도 없다. 이는 지역 국가의 구별없이 전 세계 누구나 쉽게 함여하고 함께할 수 있는 평등한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4. 행사중에는 한쪽 방향으로만 차를 나눈다. 이는 ‘주고받음’이라는 보상 개념없이 다른 사람에게 차를 제공하는 순수한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5. 서로 다른 차를 받고 감사한다. 어떤차는 좋고 어떤차는 나쁘다는 분별심이나 선호없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시는 차 생활을 실천하는 것이다.

6. 최선의 자세로 차를 낸다. 차 내는 행위에 몰입함으로서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차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다.

7. 시작 신호와 함께 말없이 차를 우리고, 나누고 마시면서 진행한다. 모든 사람은 모두 함께 동시에 시작하고 끝내며 언어적 한계없이 조화로움으로 전체가 하나되는 것을 경험한다.

국제무아차회 한국대회 일정

가. 환영만찬-18:00-20:30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야외특설무대
_welcome to Korea!, 국제 차문화교류의 밤 : 전통다법공연 및 축하공연
_주관 : 국제무아차한국위원회,(사)국제차문화교류협력재단
_대회장 인사, 외국대표 감사인사, 각국대표 및 참가자들 소개
_신라다법, 선비다법, 현대다법, 가야금공연, 대금공연, 축하공연3곡

나. 국제무아차회 각국 대표자 회의
-17:00-18:00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회의실
_사회 : 손연숙 /국제무아차한국대회 사무총장
_대회장 인사, 각국 대표자 인사 및 소개, 경과보고 및 일정보고

다. 개막식-10:00 전북익산 원불교총부 반백년기념관
_사회 : 김종희
_식전행사-9:50 : 전인삼 명창과 판소리 합창단 공연
_개막식인사,개막선언,경과보고,대회사,어린이다법시연,내외귀빈축사,무아차회연혁및의의dvd상영
_폐회공연 : 판소리합창단

라. 무아차회-11:10-12:10 전북익산 원불교총부 잔디광장
_세계 11개국 차인 200여명과 한국을 대표하는 차인 1,000여명이 함께하는 세계적인 국제무아차회.
개막식무아차회에서는 무아차회의 기본정신인 무차별성, 개방성, 자발성, 복합성을 볼 수 있는 차문화교류 축제의 장으로 펼쳐진다.
_피날레공연 : 강강수월래

마. 국제 차 학술세미나-14:00-17:00 원광대 숭산기념관 3층 대회의실

14.Sun>
바. 무아차회-10:30-11:50 서울 창경궁
_한국 고궁에서 세계인이 함께하는 찻자리
_우리 한국문화의 진수인 창경궁에서 전세계 차인 400여명(외국인 200명, 한국의 차인 200명)이 함 께한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창경궁에서 세계적인 차문화교류 네크워크의 가능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한다.

사. 폐막식-17:00-21:00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탈룸

_사회: 정수호.
_식전행사-서울 원음국악관현악단 연주
_폐막식 : 시작선언,경과보고,축하공연(백의다심결),대회장인사,내외귀빈축사,참가국 대표단 인사
및참석자소개,‘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2007대회 결산동영상),폐막선언및대회기이양
_식후행사-식사시작 : 세계각국무대전통다법시연(가예원,중국,일본등), 세계각국참가자장기자랑

특별행사- ‘제19회 익산국제차문화축제

(사)국제차문화교류협력재단은 한국차문화의 보급과 확산을 위해 해마다 익산국제차문화축제를 실시해왔다.
제11회 국제무아차회 한국대회를 맞아 전북 익산 배산체육공원 내에서
‘제19회 익산국제차문화축제’를 열 계획이다.
1) 일시 : 2007년10월 13일 오후 13:- 오후6시 30분.
2) 장소 : 전북 익산시 배산체육공원 내 특설무대.
3) 내용 :
1. 한국전통차문화체험관
_도자기 체험, 천연염색체험, 서각체험, 차제다체험, 압화체험 등
2. ‘온가족이 함께 만들어요-녹차 떡 다식’
_녹차떡 만들기, 다식 만들기 등
3. 차도구 판매전시관
_우리차 전시, 도자기전시, 찻상전시 등
4. 아름다운 찻자리전
5. 어린이 전통차예절 겨루기대회

특별전시- ‘한국전통차문화전

제11회국제무아차회한국대회에서는 한국차문화의 현주소를 알수 있는 다양한 특별전을 연다.
한국차문화의 중심은 찻자리를 아름답게하는 ‘다화’(茶花) 담백한 찻자리를 풍성하게 하는 ‘다식’(茶食) 그리고 그 찻자리의 품격을 높여주는 한국전통장신구들이다.

(사)국제차문화교류협력재단은
제11회 국제무아차회에서 한국전통 찻자리의 미학을 보여줄 수 있는 특별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1. 다화전
2. 다식특별전
3. 한국전통장신구전.
10월13일 개막식 - 익산 원불교 총부
10월14일 패막식 - 롯데호텔크리스탈볼륨

2007년 9월 16일 일요일

장인 정신 - 반성해야 할 일

예전, 그릇이라고는 그저 옹기나 유기, 사기그릇 정도 챙기고 시집, 장가들던 그 시절에는 그릇이 구색맞춰 있는 것만 해도 뿌듯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요즘에 이르러서는 그릇하나, 찻잔하나도 집안에서 분위기를 바꾸는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른바 수요의 수준은 높아지고, 공급이 그를 따르지 못하는 수위에 이르러, 작품을 베끼고, 약간의 수정으로 신제품으로 내 놓는 웃지 못할 풍경이 펼쳐지곤 한다. 시장의 생리이기에 그에 대해 무엇을 바랄까만은 장인이라면 모름지기 자신의 작품에 책임을 가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의무를 져버린다는 것은 소비자들의 요구가 지나친 것도 이유겠지만 작품을 내 놓고자하는 작가의 정신에도 흔들림이 있지 않을까 한다.

세월이 많이 지나서도 작가(장인)의 작품이 흔들림 없는 예술혼을 자랑하는 것은 정녕 힘든일인가. 만일 그 분들이 혼이 없는 그릇을 세상에 내어놓고 정녕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내 진정 존경해 마지 않는 사기장 님들께 무진무진 바라는 바 한가지 있으니

“당신들이 내어 놓은 그릇 하나하나에 이나라 이 민족이 자랑할 수 있는 우리 혼이 깃들게 하소서”

시간은 지난다. 세월은 바뀐다. 역사속에 이륾 남긴 사기장들의 그릇이 후대에 폄하되어서는 않된다. 작은 잔 하나에도 그들의 깊은 혼을 느끼고 싶다.

석우.

2007년 9월 12일 수요일

보이차에 대한 등시해 교수의 품명편(品茗篇)

대만 등시해 교수의 품명편(品茗篇)
넓은 의미의 차자(茶滋)는 입에서 느끼는 차의 맛으로 여러 종류의 맛의 감각, 즉 물의 성품, 차에서 우러나오는 인후적인 느낌의 여운, 침이 돌아 나오는 것 등 이 모두를 의미한다.

①미도(味道)
푸어차는 통상 단맛, 쓴맛, 떫은 맛, 신맛, 맹물 맛, 그리고 무미 등의 수종으로 미도를 이룬다. 단 맛은 푸어차 애호가들이 몽매에도 구하는 맛이고, 쓰고 떫은맛은 찻잎 특유의 맛이고, 이는 더욱이 차를 좋아하는 차의 달인들이 즐기는 미도(味道)이다. 신맛과 맹물 맛은 모두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신맛과 맹물 맛은 기피하게 되고, 무미는 미도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습관적으로 아주 연한 별 맛없는 푸어차의 미도(味道)를 무미라 한다.


단맛(甘)
단맛은 어린 아이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성인 모두가 다 좋아하나 너무 짙은 단맛은 사람에 따라 좋아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차 중의 은은한 단맛은 맑고 우아하고 건강에 아무런 해가 없고 만족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단맛을 탐하고 이로 인한 푸어차의 위치가 예술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대엽종의 푸어차는 상대적으로 그 성분이 농후하여 오랜 세월동안 진화한 뒤에 비로소 쓴맛, 떫은맛이 없어지고 은은한 당분이 찻잎 중에 남아 차를 우렸을 때 은은한 감미가 돈다. 여러 푸어차 중에 홍연원차와 원차철병은 본래 같은 원료의 찻잎으로서 제조 방법(方法)이 다르다.

이 두 종의 차의 단맛은 꿀의 감미이고 광운(廣雲)공병의 단맛은 사탕수수의 단맛으로 입천정(윗턱)위에서 단맛이 오래동안 남아있다. 푸어차를 만들 때 청병(생차)으로 만든 차는 자연 발효 후에 감미가 순정청아(純正淸雅)하고 차성이 고귀하지만 숙병(熟茶)으로 만든 차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 탈속 고귀한 맛이 없다. 더욱이 신 차원의 관목은 인공시비를 사용하여 변종이 되고 맛 또한 변하여 탕의 감미가 버터맛의 느낌이 감돈다.


쓴맛(苦)
본래 차의 성품은 쓴맛으로 옛날에는 "고차(苦茶)"라 불렀다. 야생차는 너무 쓴 맛 때문에 입에 넣을 수가 없다.
선조들의 오랜 노력과 개량으로 "야생형"으로 바뀌고 다시 "과도형"으로 재배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쓴맛은 카페인으로 장기 숙성 후에는 쓴맛이 없어지고 단맛이 목에서부터 돌아 나와 진정한 건강 음료로서의 가치를 발휘한다.

현재 고품위의 녹차는 아주 어린잎으로 만들어 쓴맛을 최소화하고 있다. 연꽃향의 백침금연과 고품위의 녹차와 50년대의 복록공차, 60년대의 광운공병이 모두 쓴맛을 최소화한 푸어차이다. 쓴맛은 또한 차를 타는 방법(方法)에서도 줄일 수 있다. 어쨌든 차의 쓴맛은 일종의 미미(美味)로 시경(時經)에 쓴 차를 찬미한 말에 "유여여차(有女如茶)"라는 찬사의 비유적인 말이 있다. 미인을 쓴 차에 비유한 것으로 쓴맛이 진미(眞美)란 말인가?


떫은 맛
보통 하는말에 차는 "쓰지 않고 떫지 않으면 차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진화 60∼70년 이상 된 차에는 쓰거나 떫은맛이 없다. 차에는 양강성(陽剛性)푸어와 음유성(陰柔性)푸어가 있다. 홍인 및 녹인갑을은진기가 50년이상으로 양강성의 차품푸어이고, 진기 육십수년의 말대긴차와 80∼90년의 동경노호는 전형적인 음유성푸어이다.

떫은맛은 푸어차의 탕의 강도를 의미하고 떫은맛은 입안에 베어 침이 나오게 하는 작용을 한다. 나의 직접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운남성 중부 즉 맹고, 맹롱, 봉경 일대 차는 쓴맛의 차이고 떫은맛의 차가 아니다. 이무(易武) 의 명차가 모두 떫은맛으로 침을 돌게하는 차라고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홍인, 녹인, 송빙, 경창, 보경 등은 모두 운남 남부 차로서 이들 차들은 모두가 떫은맛을 가진 차이다. 떫은 차와 쓴 차의 차를 타는 방법의 기교도 중요하며 각자의 취향과 습관에 따라 처리할 수 밖에.
 
신맛-맹물맛(酸,水)
신맛과 맹물맛은 푸어차에서 반갑지 않은 존재이다. 이는 불량원료와 보관불량으로 신맛이 날 수 있고 신차관목으로 변경푸어에서 접할 수 있다. 시중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칠자병차, 송빙, 정흥호의 내비를 쓴 변경 푸어차, 광동병에는 신맛이 근소하게 있다. 차를 탈 때 3∼5잔 후에는 산미가 현격히 감소한다.

 
무미(無味)
무미지미(無味之味)란 입에 찻물을 넣자마나 즉화(卽化)하여 향과 맛은 즉시 고인 침에 흡수되어 맛과 향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대다수 푸어차의 전문가들은 공인하기를 "무미지미(無味之味)가 곧 푸어차의 최고품이다."라고한다. 이는 세월과 유관하다. 백년 이상의 금과공차의 평(評)에 "탕색이 있고 차맛은 진화하여 담박하다."고 하였다.

나의 선친께서 남기고 간 "홍지푸어"는 야장향에 진운이 충분하고 차기가 강렬하여, 찻물이 즉시 침을 돌게 하여 아주 은은한 무미지미로 내가 소장하고있는 차중에 최상품으로 간주한다.

"무미의 맛이야말로 곧 선의 경지"이고 비교할 수 없는 고상한 경계이며 수백 종의 차중에 오직 푸어차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 할 수 있다. 푸어차의 차도(茶道)가 곧 도가(道家)의 진정한도(眞道)이고, 무미지미 즉 맛이 끊어진 경계의 맛을 참이라 하고 바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자아적인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진정한 경계라고 할 수 있다. 즉 이름하여 선재푸어.


푸어차의 차향(茶香)


※운남 푸어차는 소엽종, 변종중엽종 관목푸어차종 등이 있지만 여기 푸어차 차향을 소개하는 것은 주로 대엽(大葉)종 교목 푸어차를 위주로 하는 것이다.

기실 푸어차는 장기 발효 차종으로 완전 발효, 중발효(重醱酵)로 남아 있는 진성의 원래의 향이 반 이상 약해지고, 아주 약한 원래의 향이 남아있다.

이 향이 곧 향이 나는 원인과 원래의 푸어차의 원향(原香)을 암시하는 것으로,푸어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향을 느끼는 중요한 목적을 충족시켜주는 관점이다.

이 것이 차잎의 등급, 제작과정의 신선도, 보존과정의 적부 등을 경과한 결과로서, 이것을 아는 것이 차의 진성을 아는 것이고, 생산과 미감을 서로 공명하고 미적인 감성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차의 향(香)은 차나무의 종류, 지역에 따라 변화가 다양하다.

※이 책에서 주로 취급하고 있는 차는 오래된 적어도 30년 이상된 청병 건창 대엽종을 주고 한 차향을 주제로 한다. 주로 차품의 대엽종 교목으로 육대(六大)차산의 산품을 표본으로 하여 차향(茶香)은 대략 다음과 같다.




예장나무의 기(樟氣)

예장나무와 함께 자란 차나무(有樟:예장나무)

차 나 무(無樟)

종 류













연하(蓮荷)



방란(芳蘭)

청홍(靑紅)

야홍(野紅)

담홍(淡紅)

연하(蓮荷)

청향(靑香)

차의 등급



1∼2



2∼4

4∼6

6∼8

8∼10

1∼2

3∼8

차 향


연꽃향
(荷香)


난초향
(蘭香)

청장향
(靑樟香)

야장향
(野樟香)

담장향
(淡樟香)

연꽃향
(荷香)

청향
(靑香)





 

푸어차의 진운(陳韻)

객관적으로 볼 때, 진(眞)이 곧 미(美)이다. 모든 사물에 진실성(眞實性)이 가장 좋은 것이다. 사람이 생활을 하는데도 감정의 세계 이면에 이 감정을 이끌어 내는 주관이 있다.




즉 이 심미적(審美的)능력이 객관적인 진(眞)성과 주관적인 감(感)성 사이에서 하나의 평형점을 얻는다. 이 도리(道理),즉 진실성(眞實性)을 누가 훌륭하다고 하지 않겠는가?

(美:아름다움.훌륭한)는 반드시 진실성의 전제하에 생기는 것이다. 푸어차에서 이뤄지는 이 미(美)도 객관적 진성(眞性)과 주관적 감성(感性)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말에 의하면 푸어차를 마시느데는 첫째 요구조건이 좋은 건창의 생차이고, 둘째 오랜 향과 맛과 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향과 맛, 기를 감정하는데는 ①차운(茶韻), ②차향(茶香), ③단맛(甘味), ④침이 생기는 것(生津), ⑤차기(茶氣)의 순서이다.

진운이란 일정기간 경과진화 후 발생하는 운미(韻味)이다.

신선한 색감(色感),혹은 진구(陳久)적 감각을 말한다. 푸어차의 영역(領域)중에 진운이란, 맛을 보고 느끼는 한 형태로서의 감성미(感性美)로 반드시 일정한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이 지식과 경험은 독특한 학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곳에서 경험을 얻어 올 수도 없는 것이고. 아주 깊고 오묘하여 현저히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운은 일정한 표준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완전히 경험적 감각적으로 알아야 하는것이다. 포도주 감별사가 그 혀와 감각으로 감별하듯이 일종의 식물의 진화 역정(과정)을 독특한 입의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는 몸으로 직접 푸어차를 마셔보고 부단히 선배의 지도 아래 다른 년대의 탕 중에서 다른 진운의 감각을 익히는 길 밖에 없다. 이는 말로 전할 수 없고 언어문자로 전달할 수 없는 선(禪)의 경지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시중에서 상인들이 100년 푸어라고 판매하는 차들은 거의 근거가 없고, 그들 스스로 붙인 연대이다.

진실로 근거가 증빙되며 판매되고 있는 최고 오래된 것으로는, 동경노호(同慶老號)원차가 약80∼90년의 진기(陳期)이고, 복원창(福元昌)호가 100년 이상 된 것이다.

그 이외 동흥호, 정흥호, 송빙호, 경창호, 강성호, 맹경호, 동창호, 가이흥호 등 대부분이 60∼70년 정도가 된 진년노푸어(陳年老普 )라고 할 수있다. 듣기로는 푸어차에 대한 여러 가지 말이 있다.

①푸어차의 미도(味道)가 너무 강렬하다.②최고로 온순하다.③위장을 깍는다.④위장을 따뜻하게 하고 장수한다.



이상과 같이 조금만 들어도 상호 모순점이 두드러진다. 이상은 기실 푸어차의 진기가 같지 않은 결과에서 나온 말이다. 강렬하여 위장을 깍는다는 것은 반드시 햇차를 마신 것이고, 온순난위는 오래된 차를 마신 결과이다. 하관차창 출품 갑을급(甲乙級) 생타차( 茶)의 차성은 너무 강렬하여 유럽 시장에서는 제일 좋아하는 차품이다. 어떤 약국에서 비만에 특효가 있는 영약으로 판매하고 있는 50∼60년 된 말대긴차는 차성이 너무 온순하여 강한 미각이 조금도 없어 어떤 중의(中醫)는 대만달러 10,000NT$에사서 온화촉진(溫和促進)하는 양약으로 쓴다.

이와같이 다방면으로 볼 때 최고 오래된 차(월진월향:越陳越香)를 최고로 사랑한다. 저장과정 중, 청순한 푸어차 진성이 필수, 아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①건창진화
②온도 급격 변화 불가(한냉 고온등)
③잡맛에 감염 기피(음식, 향료, 잡향 등)
④대나무 껍질 포장(잡미보호, 청순)
⑤진화 연대 수명(최저 60년 이상)



용마패 동경노호는 진화감이 최고 절정으로 반드시 밀봉 보관함이 최적이다. 계속 진화 연후에는 차성이 소실되고 맛과 향이 쇠퇴한다. 진기100년 이상의 금과 푸어는 오직"탕색이 있고 차 맛이 진화되어 담박하다"는 것만 밝혀져 있을 뿐이다.

인체 내에 생명을 넣어 하나의 체를 만드는 것과 같다 할까? 푸어차의 진운(陳韻)이 곧바로 푸어차의 구체적인 역사의 지표이다. 역사는 생명의 누적이다. 역사는 인류를 위해서 감정의 역량을 편직해 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진운은 음악에서의 북소리를 연상케 하고, 깊고 깊은 사람의 심장진동의 느낌이라고 할까? 어쨌든 진운(陳韻)은 사람에게 느끼게 한 진감 즉 월진월향(越陳越香)을 가져다준 가장 고귀한 산물이다.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과 함께 진운은 인류에게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미감이다. 이미 이루어져 자연적으로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일뿐.

<푸어차 진운의 분류>

  








청 (靑)


신 (新)

구 (舊)

노 (老)

진 (陳)

고 (古)





1 ∼ 5




5 ∼ 20


20 ∼ 40

40 ∼ 60

60 ∼ 100

100 이상




근 기 (近 期)

후 기 (後 期)

조 기 (早 期)

선기(先期)

원기(遠 記)




70 ∼ 90

50 ∼ 70

30 ∼ 50

30∼청말

청말이전
(淸以以前)

차품
茶品


문혁전차(文革 茶)
73 전차 (73 前茶)
백침금연(白針金蓮)
홍대병차(紅帶餠茶)
칠자황인(七子黃印)
푸어방차(普 方茶)
광남공병(廣南貢餠)
7562전치(7562 茶)
농공상전(農工商 )
칠자병차(七子餠茶)
8562 차
강성전차(江城 茶)
75후전차(75厚 茶)
광동병차(廣東餠茶)


홍인원차(紅印圓茶)
홍연원차(紅蓮圓茶)
원차철병(圓茶鐵餠)
홍심원차(紅心圓茶)
녹인원차(綠印圓茶)
황인원차(黃印圓茶)
복록공차(福綠貢茶)
사보공차(思普貢茶)
광운공병(廣雲貢餠)
칠자철병(七子鐵餠)
홍인타차(紅印 茶)





보경원차(普慶圓茶)
동흥원차(同興圓茶)
가이흥전(可以興 )
송빙원차(宋聘圓茶)
경창원차(敬昌圓茶)
강성원차(江城圓茶)
양빙원차(楊聘圓茶)
동창원차(同昌圓茶)
동경원차(同慶圓茶)
홍인원차(紅印圓茶)
진운호원차
(陳雲號圓茶)



동경노호
(同慶老號)
말대긴차
(末代緊茶)
차순원차
(車順圓茶)
정흥원차
(鼎興圓茶)
홍지원차
(紅芝圓茶)
홍창원차
(鴻昌圓茶)



금과공차
(金瓜貢茶)
복원창호
(福元昌號)


인터넷 카페에서 퍼왔는데 출처가 정확히 나오지 않고 그냥 [네이버 살아가며 님의 글입니다]
라고만 되어 있어서 저작자가 확인이 되면 저작권자의 출처를 밝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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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관 지음 | 형설출판사 펴냄
중국 차 입문서. 이 책은 중국에서 차가 생산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12개 성(절강성, 광동성, 운남성, 안휘성, 대만 등)을 각각 수차례 반복하여 조사한 중국차와 그 문화에 대한 실질적인 연구 보고서이다. 차...